- ※멀고도 어려운 단어 ‘화학’. 그러나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화학이 크고 작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광렬 교수가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안전·산업에 얽힌 화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뼈 건강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D는 몸속 콜레스테롤 유도체와 자외선이 만나서 생성된다. GETTYIMAGES
비타민D, 활성화 시 칼시트리올로 변해
골밀도 검사까지 마친 뒤 담당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1년에 두 번 뼈 주사를 맞으셔야겠네요. 그리고 칼슘, 마그네슘, 비타민D가 들어 있는 약을 처방해드릴 테니 매일 드시고, 바깥에서 햇볕을 쬐며 자주 걸으세요. 아직은 뼈가 부러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듯하지만 골다공증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햇볕을 쬐며 걷는 것과 골다공증이 무슨 상관일까. 그리고 비타민D는 왜 처방했을까.뼈 건강에는 칼시트리올(calcitriol)이라는 분자가 중요하다. 뼈는 칼슘 양이온(Ca²⁺)과 인산 음이온(PO₄³⁻)으로 이뤄진 수산화인회석이라는 광물에 콜라겐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뼈에서 수산화인회석이 빠지면 건물 기둥이 사라진 것처럼 전체 뼈 구조가 무너지는데, 칼시트리올은 뼈에 수산화인회석 성분이 모자랄 때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즉 칼시트리올이 부족하면 뼈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칼시트리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 몸속에 있는 콜레스테롤 유도체가 자외선과 만나면 비타민D가 생긴다. 바로 이 비타민D가 간과 신장에서 구조 변화를 겪고 활성화돼 칼시트리올이라는 물질로 변하는 것이다. 칼시트리올은 뼈 생성과 유지를 조절하는 능력을 가졌기에 호르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즉 비타민D는 체내에서 늘 칼시트리올이라는 호르몬으로 변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칼시트리올의 특성을 이해하면 뼈 건강을 지키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몸속에서 스스로 만들어지거나 음식을 통해 들어온 콜레스테롤 유도체가 자외선과 만나 비타민D가 생성된다. 이후 무거운 하중을 받는 운동 등으로 뼈에 무리가 가는 일이 생기면 우리 몸은 알아서 비타민D를 칼시트리올로 바꿔 뼈에 수산화인회석을 채워 넣고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어머니의 경우 고령이라 젊은 사람들처럼 외부 활동을 하기 어려우니 비타민D를 처방해준 것뿐이다.
어머니는 햇볕을 충분히 보면서 자랐고 평생 그렇게 생활했다. 과거 동년배에 비해 뼈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의사 진단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이가 드니 뼈에 구멍이 생기고 키가 줄었다. 그런데 지금 어린 학생들, 한창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떤가. 이른 아침 버스, 지하철, 자동차를 타고 학교나 회사로 이동해 하루 종일 실내에서 지낸다. 창문 너머로 빛이 들어오고 실내조명도 밝으니 햇볕을 많이 쬐고 지낸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유리창은 비타민D를 우리 몸속에서 합성하는 데 쓰이는 자외선 대부분을 거른다. 유리창 앞에 오래 서 있어 봤자 비타민D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창 뼈가 자라야 할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이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평생 가져가야 할 뼈가 시작부터 부실하게 만들어진다.
자외선 피하기만 하면 뼈 건강 놓칠 수도
또 한국 사람들은 자외선 기피 현상도 유별나다. 피부 노화를 겪지 않겠다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상관없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그것도 모자라 얼굴 전체를 덮는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까지 자외선을 피해야 할까. 식사 후 밖에서 산책하며 얼굴과 팔에 조금만 햇볕을 받아도 비타민D가 저절로 생성돼 뼈가 튼튼해질 텐데, 당장 더 흰 피부를 얻겠다고 평생 갈 뼈 건강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실내 중심 생활, 자외선 기피증만 아니라면 현대인이 비타민D 부족에 시달릴 이유는 거의 없다. 비타민D는 체내에서도 생성되지만 음식에도 들어 있다. 비타민D2는 버섯 같은 식물성 식품에, 비타민D3는 연어·정어리 같은 생선류와 소간, 달걀노른자에 풍부하다. 최근에는 시중에서 비타민D를 첨가한 우유도 판매되고 있다.
그럼에도 비타민D 결핍이 생겨 보충제를 찾아 먹는 사람이 꽤 된다. 그런데 어떤 것이든 과유불급이다. 비타민D는 지용성, 즉 지방에 저장되기에 몸 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고용량 비타민D를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체내에 너무 많이 쌓여 혈액 속 칼슘 농도가 올라가고 신장에 무리를 주거나 혈관 석회화를 일으킬 수 있다.
뼈는 평생 가는 자산이다. 나이가 들어도 등이 굽지 않고 키가 덜 줄어들려면 젊어서부터 신경 써야 한다. 사실 우리 몸은 알아서 뼈 건강을 지킬 준비가 돼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큰 손해다. 햇볕을 쬐면서 잠시 걷기만 해도 공짜 비타민D가 만들어진다. 이 공짜 비타민D로 건강한 뼈를 얻게 된다니, 노후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투자가 어디 있나. 당장 움직이자.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아찔한 화학책’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