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이 영입한 스트라이커 알렉산더 이삭이 이적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리버풀은 이삭 영입에 1억4500만 유로(약 2366억 원)를 들여 EPL 사상 최고 이적료 기록을 갈아치웠다. GETTYIMAGES
EPL 이적료 지출 1위 리버풀
보통 여름 이적시장은 유럽 리그의 새 시즌 개막 후 끝난다.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같은 빅리그는 대개 9월이면 마감된다. 튀르키예나 포르투갈, 최근 큰손으로 부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적시장은 이보다 다소 늦게 매듭지어진다. 따라서 유럽 빅리그 이적시장이 닫히면 해당 리그 팀의 신규 영입은 어렵지만 아직 장이 열린 리그로 방출은 가능하다. 특히 올해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이 치러진 덕에 전례 없는 ‘임시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기도 했다.올여름 이적시장 화두는 단연 EPL의 자본 공세였다. 유럽은 물론 세계 축구시장을 장악한 EPL은 이번에도 막대한 이윤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EPL은 이번 이적시장에서 35억9000만 유로(약 5조8582억 원)를 썼다(이하 이적료 정보는 ‘트랜스퍼마크트’를 바탕으로 1유로=1631.56원 환산, 그래프 참조). 2024∼2025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쓴 23억7000만 유로(약 3조8668억 원), 2023∼2024시즌 여름 28억1000만 유로(약 4조5581억 원)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EPL 구단별로 봐도 투자 규모는 막대했다. 대표 주자는 지난 시즌 챔피언 리버풀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던 미드필더 플로리안 비르츠를 EPL 역사상 가장 비싼 몸값인 1억2500만 유로(약 2039억 원)에 영입했다. 리버풀은 이적 마감일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스트라이커 알렉산더 이삭을 1억4500만 유로(약 2366억 원)에 영입하며 몇 달 만에 최고 이적료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웠다. 이로써 EPL 역대 1·3위를 기록한 두 선수 이적료는 유럽축구 전체로 따져도 10위에 드는 초대형 계약이다. 리버풀은 비르츠와 이삭 이적료를 포함해 약 4억8290만 유로(약 7880억 원)를 쓰며 EPL의 머니게임을 주도했다. 일부 선수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킨 금액을 제외한 ‘순수 이적료’만 약 2억1950만 유로(약 358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세계 유망주 수집에 열을 올리는 첼시는 이적료로 약 3억2815만 유로(약 5354억 원)를 썼다. 게다가 선수 방출과 관련해 끝내주는 수완을 발휘한 덕에 이적시장에서 오히려 금전적 이득을 봤다. 아스널은 약 2억9350만 유로(약 4790억 원)를 들인 선수 보강으로 우승 갈증을 해소하려고 나섰다.
격차 키우는 ‘그들만의 리그’
이들 빅3 말고도 EPL에는 이번 이적시장에서 2억 유로(약 3263억 원) 이상을 쓴 팀이 5곳이나 있다. 뉴캐슬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노팅엄 포레스트, 토트넘 훗스퍼, 맨체스터 시티다. 1억 유로(약 1632억 원) 이상 쓴 팀만 해도 선덜랜드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AFC 본머스, 에버턴, 번리, 리즈 유나이티드 등 7팀에 달한다.비교적 돈을 적게 쓴 브렌트퍼드도 약 1억 유로를 쏟아부었고, 브라이턴 앤드 호브 알비온은 약 8000만 유로(약 1305억 원)를 투자했다. 이번에 EPL에서 이적료를 가장 적게 쓴 팀은 약 3000만 유로(약 490억 원)의 애스턴 빌라였다.
다른 나라 축구계의 씀씀이와 비교하면 EPL이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임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EPL 다음으로 이적료를 많이 쓴 리그는 이탈리아 세리에A다. 세리에A는 약 11억8000만 유로(약 1조9252억 원)를 썼다. 독일 분데스리가(약 8억5900만 유로·약 1조4015억 원)와 스페인 라리가(약 6억8200만 유로·약 1조1127억 원), 프랑스 리그1(약 6억5200만 유로·약 1조637억 원)이 뒤를 이었다. 이적시장 큰손이 됐다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약 5억5200만 유로(약 9006억 원)를 썼고, 포르투갈 리그(약 3억3700만 유로·약 5498억 원)와 터키 쉬페르리그(약 3억3200만 유로·약 5516억 원)가 각각 6000억 원이 채 안 되는 투자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EPL 구단들이 쓴 돈은 유럽 나머지 4대 리그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2024∼2025시즌에는 이적료 지출 규모 2~4위였던 세리에A, 분데스리가, 리그1을 합친 것보다 약간 적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여름에는 EPL과 나머지 리그의 머니게임 규모가 더 크게 벌어졌다.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가 이번 이적시장에서 쓴 돈이 약 1억6700만 유로(약 2725억 원), 바르셀로나는 2750만 유로(약 448억 원)다. 물론 이미 전력을 갖춘 레알 마드리드나 라리가의 재정 규제에 묶여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바르셀로나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유 선수단의 현 가치와 이적시장 지출은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EPL 상당수 구단의 자금력이 당분간은 여름마다 올해와 비슷한 이적료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2021년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유럽 일부 구단과 함께 ‘그들만의 리그’인 ‘유럽 슈퍼리그’ 창설을 시도했다. 각 리그에서 인기 팀만 모아 별도 리그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더 많은 수익을 확보하기 위한 지나친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경영 귀재인 그가 EPL의 머니게임에 대비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