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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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수습하며 엄청난 충격 홀로 견디는 소방관들

이태원 참사 투입 소방관 2명 사망… 위기 징후 동료 맞춤 관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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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5-08-3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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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일 오후 대구 서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진화를 마친 소방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선 소방공무원들은 정신건강 지원이 개별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뉴스1

    7월 4일 오후 대구 서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진화를 마친 소방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선 소방공무원들은 정신건강 지원이 개별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뉴스1

    “소방관들은 구조나 화재 진압을 나가면 훼손이 심각한 시신을 보는 일이 잦다. 평소 스트레스에 익숙한 동료들도 이태원 참사 당시엔 약을 먹거나 병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소방서에서 근무했던 소방관 A 씨)

    “웬만한 현장엔 무뎌진 편인데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자살 시도자 구조에 실패한 뒤 한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 사람이 날아다니는 악몽을 꿨다. 그 뒤론 구급 지원 출동을 나갈 때 사상자 얼굴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한다.”(5년 차 소방관 B 씨)

    2022년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 2명이 최근 사망한 사실이 알려졌다. 30대 소방대원 박모 씨는 실종 열흘 만에 경기 시흥 교량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40대 소방대원 남모 씨는 자택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박 씨 유족은 박 씨가 이태원 참사 당시 반장으로 선두에서 현장을 지휘했다고 밝혔다. 그는 생전 9차례 심리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았으며, 우울증 치료 중 ‘미안하다’는 글을 남기고 숨졌다. 남 씨는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지방 소방서로 전보됐고,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두 사람의 죽음은 소방공무원 정신건강관리 체계의 허점을 드러냈다. 지난해 소방청이 실시한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살 위험군에 해당하는 소방관은 전체 5.2%(3141명)로, 전년(4.9%)보다 증가했다. 

    “술 한잔으로 잊어야 하는 트라우마”

    소방공무원 사이에서는 “구급은 1분에 1건, 구조는 30분에 1건, 화재는 50분에 1건”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전국 곳곳에서 24시간 내내 긴급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 119 신고 건수는 1135만여 건에 달했다. 1분에 약 21번 신고 전화가 울린 셈이다. 26년 차 소방공무원 C 씨는 “비번에도 재난이 발생하면 1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정상 소방공무원은 평생 정신적 긴장감과 신체적 피로를 달고 다닌다”고 말했다.

    출동이 잦을수록 트라우마도 누적된다. 소방공무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현장 ‘설’을 갖고 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흩어진 시신 일부를 수습한 일, 화재 현장에 나갔다가 손에 화상을 입어 결혼식을 하지 못한 일, 태풍 피해 복구로 사흘을 밤새운 일 등 다양하다. B 씨는 “고된 현장 경험을 공유하는 게 ‘진짜 소방관’이 되는 관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C 씨는 “힘들어 보이는 동료에게 선뜻 다가가 배려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면서 “술 한잔하며 털어내고 내일 출동 잘하자고 격려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투철한 직업정신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신적 고통을 조직 내에서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소방공무원 5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소방관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 증상 등을 호소했다.

    스트레스가 누적돼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A 씨는 “자살 현장을 수습한 뒤 한두 달 정도는 예민해지고, 누군가 나한테 시비라도 걸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며 “지나고 나니 그게 PTSD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C 씨는 “대부분 임용 때부터 직무 스트레스를 각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스트레스에 둔감하고 강인한 성향이라고 착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쌓인 감정이 성격을 바꾸거나 사소한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동료를 종종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나고 보니 그게 PTSD였던 것 같다”

    소방청은 2012년부터 ‘소방공무원 보건안전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마음건강 설문조사 △찾아가는 상담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 △상담·검사·진료비 지원 등이 주요 사업이다. 올해 국비 예산은 42억9900만 원으로 전년보다 16.7% 늘었고, 상담사 수도 2020년 72명에서 올해 128명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상담사 인당 연간 상담 건수는 779건에 달해 인력 부족은 여전하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데는 여전히 장벽이 높다. 26년 차 소방공무원이자 현재 소방 간부인 C 씨도 암 진단을 받고 공무상 재해를 신청했지만, 최종 인정까지 2년이 걸렸다. 관리직이 엄살을 부린다고 할까 봐 신청 자체를 망설였고, 이후에도 서류 보완과 현장 확인 등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했다. 소방청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방공무원이 정신 질환으로 공무상 질병 요양을 청구한 건수는 총 122건에 불과하다.

    소방공무원들은 정신건강 지원이 효과를 내려면 개별 상황에 맞춘 접근과 꾸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A 씨는 “이태원 참사에 출동했던 일부 동료는 지금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전체적인 관리도 필요하지만, 위기 징후가 있는 동료들을 꾸준히 돌보는 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B 씨는 “제도가 있어도 병원에 가려면 연차를 내거나 출동조를 조정해야 한다”면서 “그 공백을 누군가는 채워야 하니 육아휴직처럼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조용래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강원 지역에서 ‘찾아가는 상담실’을 8년째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힘든 경험을 털어놓는 걸 나약함으로 여기는 소방관이 아직 많다는 사실”이라며 “PTSD는 재난 직후 급성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몇 개월 혹은 몇 년 뒤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 뒤늦게 발현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사 7명이 강원처럼 넓은 지역을 맡고 있어 위험군을 선별하고 계속 살피기엔 역부족”이라며 “그래도 상담을 받은 소방관들이 주변에 경험을 공유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만큼 이런 흐름을 확산하려면 전문 인력 확충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채원 기자

    윤채원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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