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을 위해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는 배달 라이더들. 동아DB
3년 전 배달 라이더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거동이 힘든 형과 예전부터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최근 경기 군포에서 배달 도중 숨진 40대 라이더 김모 씨에 대해 동료 배달 라이더 윤예성 씨는 8월 13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 씨는 8월 5일 밤 10시쯤 군포 한 교차로에서 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당시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운 뒤 다시 출발하던 버스운전기사가 김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
“몸 불편한 형과 아내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하루 14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낸 한 가장의 죽음은 국내 배달업계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 씨가 조합원으로 있던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와 동료들에 따르면 고인은 ‘쿠팡이츠’의 리워드 상위 그룹인 ‘골드플러스’를 유지하고자 지난 2주 동안 콜의 90% 이상을 수락해 400건 넘게 배달했다고 한다. 쿠팡이츠는 콜 수락률과 배달 건수를 기준으로 라이더를 그린(7%)·블루(15%)·퍼플(20%)·골드(25%)·골드플러스(30%) 그룹으로 나눠 추가 운임을 차등 지급한다. 사고의 구체적 원인은 향후 경찰 조사를 통해 가려야겠지만, 이와 별개로 장시간 노동과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된 배달 라이더의 현실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동료 윤 씨는 “고인이 평소 과로로 피로가 누적되지 않았다면 버스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라이더의 배달 중 사망 및 부상 위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산업재해(산재) 사상자 수 1위는 ‘배달의민족’ 물류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아한청년들’(527명)이었고 쿠팡이츠(241명)가 뒤를 이었다. 우아한청년들은 2022년∼올해 1분기 산재 사상자 1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통계는 이들 업체에서 배달하는 인원이 많은 데다, 기업 차원에서 산재 인정에 적극 임한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다만 라이더가 일하는 과정에서 죽고 다칠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배달 라이더의 산재 위험이 높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이륜차, 즉 오토바이 특성상 일단 사고가 나면 사망 및 부상 확률이 높은 데다, 일부 라이더가 배달 과정에서 과속과 신호위반을 하는 측면도 있다. 현직 배달 라이더 A 씨는 “점심시간처럼 피크타임이 되면 배달 오토바이들이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에서 제공하는 각종 프로모션을 따내려고 과속 등 위험하게 주행한다”면서 “나도 위험한 것은 알지만 과속이나 신호위반을 해서라도 돈을 더 받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험한 운행에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배달 오토바이가 곡예 운전을 해서 식겁했다” “배달 오토바이의 인도(人道) 주행이나 과속은 기본” 같은 게시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8월 12일 ‘산업재해 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유상운송보험’ 가입률 40%도 안 돼
하지만 이 같은 문제 이면에는 배달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게 라이더들의 하소연이다. 최근 플랫폼 기업들이 배달 기본 운임을 낮추는 대신 콜 수락이나 배달 건수·거리 등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해 라이더의 과속·과로가 심해졌다는 주장이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8월 13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플랫폼업체들이 배달 운임 하한을 과도하게 낮춰 라이더들의 과속과 과로를 유발하고 있다”며 “배달 라이더를 위해 최저임금 이상 수입이 보장되는 ‘안전운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더 큰 문제는 상당수 배달 라이더가 영업용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오토바이 운전자의 ‘유상운송보험’ 가입률은 2022년 기준 38.7%에 불과하다. 배달 라이더와 같이 영리를 목적으로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은 유상운송보험에 가입해야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인·대물 배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보험료가 일반 가정용 보험보다 비싼 탓에 적잖은 배달 라이더가 유상운송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배달 플랫폼업계도 라이더 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유상운송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와 보험업계가 보험료 단체 할인이나 시간제 보험 판매 같은 방안을 내놨지만 아직 배달 라이더의 유상보험가입률은 저조하다. 이에 대해 이주한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배달 라이더가 유상운송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라이더 자신은 물론, 자칫 시민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면서 “택시나 화물차 기사처럼 유상운송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라이더유니온지부를 비롯한 노동계도 배달 라이더 자격제와 안전교육 및 유상운송보험 가입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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