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다. 미군이 주둔하는 어느 국가와 비교해 봐도 한국 기여도가 높은 편인데 땅까지 달라고 진지하게 말한 것이라면 지나친 ‘성동격서’가 아닐까 싶다.”(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기지 소유권 요구에 대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이어 급기야 영토를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미군 공여 지역 여의도 34개 면적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7일(이하 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우리가 가진 큰 기지의 토지 소유권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우리는 땅을 줬다’고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은 땅을 빌려준 것”이라며 “우리는 임대차계약(lease)을 없애고 엄청난 군을 두고 있는 땅의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기지는 경기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다. 미국 해외 주둔 기지 중 단일 기지로는 최대 규모로 면적만 약 1467만㎡(여의도 면적의 5배)에 달한다.
소유권 발언이 논란이 되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단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부지는 우리가 공여하는 것”이라며 “쓰도록 하는 것이지 리스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SOFA 제2조 1항은 “미국은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대한민국 내 시설과 구역의 사용을 공여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여는 시설과 부지에 대한 사용권을 준다는 의미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캠프 험프리스 등 주요 미군기지 8곳을 포함해 미국에 공여한 지역은 62군데로 총 9435㎡ 규모다. 이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토지라 임차료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측이 주한미군에게 제공하는 간접적 지원에 해당한다. 2022 국방백서는 주한미군에 무상 공여된 토지에 대한 임대료를 연간 1조739억 원으로 평가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미국 측에 토지 소유권을 넘기려면 SOFA를 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회 비준(과반수 출석, 출석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더구나 대한민국 영토를 외국에 양도하는 것은 위헌 요소가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독일 등 미군이 주둔하는 128개국에서도 토지 사용권만 있을 뿐 소유권을 가진 경우는 없다.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주요 기지. 미국 육균 홈페이지
“안 되면 말고” 트럼프식 수법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소유권 주장은 방위비 분담금·관세 등 향후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발언도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트럼프 대통령이 답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관세 서한을 공개한 뒤 “우리는 한국을 재건했고 미군이 계속 주둔했지만 (한국은) 매우 적은 금액을 냈다”며 “연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해 합의된 2026년 방위비 분담금 1조5192억 원의 9배에 달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수조차 사실과 다르게 얘기한 것을 보면 자세한 양국 협정 내용도 모른 채 소유권을 언급했을 개연성이 크다”며 “협상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보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툭툭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부동산 사업가 기질과 ‘확장주의’가 합쳐진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후 ‘영토 팽창주의’로 여겨지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1월에는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2월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영토로 삼아 지배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반발을 샀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월 26일 한미연구소(ICAS)가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고, 그가 미국을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조차 어렵다”며 “용산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서울 핵심 지역이 됐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거기서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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