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발생한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 뉴스1
2022년 10월 경기 성남시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터졌을 때 당시 강동석 국정자원 원장은 이 같이 공언했다. 하지만 9월 26일 국정자원 대전 본원에서 불이 나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먹통이 되면서 이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8년부터 이중화 필요성 제기
화재는 26일 국정자원 본원 5층 전산실에서 발생해 전산장비 740대가 전소됐다. 화재 나흘째인 29일 정오 기준 62개의 서비스만 복구됐을 뿐 나머지 585개의 서비스는 여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정자원 화재로) 국민께서 큰 불편과 불안을 겪고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이번 전산망 마비 사태를 두고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카카오 먹통 사태뿐 아니라 2023년에도 정부 전산망 마비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행안부는 장비(라우터) 불량으로 결론 내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서버 먹통 사태는 반복됐다.
화재가 발생하면 데이터 센터에는 재난복구(DR‧Disaster Recovery)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 이는 동일한 서버를 외부에 두고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중화 체계를 구축해둬야 가능하다. 하지만 대전 본원의 일부 서버에만 이중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은 2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대전과 광주 센터에는 DR 시스템이 최소한의 규모로만 구축돼 있다”며 “시스템별로 스토리지(저장)만 돼 있거나 데이터 백업 형태로 된 것도 있어 재난 복구 시스템을 발동할지 원 시스템을 복구할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중화 체계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국정자원의 제4센터인 공주 센터 건립은 DR 시스템을 전용 수행하는 용도로 2008년 추진에 나섰다. 당초 2012년 구축을 완료하고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2019년 착공에 들어가 2023년 센터 건물만 완공했다. 2024년에는 공주 센터에 서버를 설치해 이중화 체계 구축을 완료한다는 계획 하에 예산이 편성됐다. 하지만 2023년 정부 전산망 먹통 사태 이후 나온 종합 대책을 반영해야 한다며 기획재정부와 협의절차를 거치며 사업이 또 지연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에 대해 7월 보고서를 통해 “환경변화에 대응한 계획변경이 불가피했다는 점은 인정되나 비상사태에 대비한 재난 복구 전용 데이터센터의 필요성을 인식한 시점 및 구축 운영 계획에 비해 장기간 지연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9월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앞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뉴스1
등잔 밑이 어둡다
이중화 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부 사업은 한없이 지연되는 동안 정부는 민간 기업의 DR 시스템에 대해서는 호되게 지적했다.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 발생 이후 카카오의 서버 관리 문제를 지적하며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국회에서는 데이터센터 이중화·이원화 조치 마련과 플랫폼 사업자가 재난을 수습·복구하기 위한 방송통신재난 관리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카카오 먹통 방지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 데이터에 대해서는 재난에 취약한 상태로 방치한 것이다.화재 원인으로 지목받은 배터리 부실 관리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번 화제는 국정자원 대전본원 5층 전산실에서 배터리를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 불꽃이 일며 화재가 발생했다. 배터리는 서버에서 불과 60c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연한을 넘겨 10년 이상 사용한 배터리도 문제가 됐다. 행안부 측은 29일 “2024년 6월 정기검사 당시 사용 연한인 10년이 지나 교체 권고를 받은 것은 맞다”며 “다만 2024년과 2025년 정기검사 모두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형중 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배터리와 서버를 그렇게 가까이 뒀다는 것, 이중화 시스템을 10년 넘게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만 봐도 정부가 데이터 관리를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며 “결국은 국가 차원의 데이터 관리 마스터 플랜 없이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만 해결하는 땜질식 처방이 화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문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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