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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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기르고 조직 관리 경험”… 재벌 총수 자녀 잇단 장교 복무

이재용 회장 아들 이지호 씨, 미국 시민권 포기하고 해군 장교 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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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09-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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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9월 23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입교식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9월 23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입교식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25)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해군 장교로 입대하면서 재계 오너 3~4세 자녀들의 장교 복무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이 군 면제를 받아 지탄을 받았던 과거와 달리 병역의무를 다해 공적 리더십을 기르는 기회로 활용하는 이가 늘고 있다.

    삼양그룹 4세 김건호 통역장교 복무

    이 씨는 9월 15일 해군 학사사관후보생 139기로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입영해 23일 정식 입교식에 참석했다. 이 씨는 앞으로 10주간 소형고무보트(IBS) 훈련, 전투 수영, 해병대 전지훈련, 사격, 화생방 등 초급 장교에게 필요한 기본 소양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입교식 후 노승균 장교교육대대장은 후보생들을 격려하며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자랑스러운 해군 장교로 임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단상에서 “사관후보생 이지호,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답하며 포부를 밝혔다. 

    교육을 마친 후보생들은 11월 28일 임관식을 거쳐 12월 1일자로 해군 소위로 임관한다. 이 씨의 복무 기간은 훈련 포함 총 39개월이며 보직은 통역장교로 배정될 예정이다. 

    이 씨는 2000년 미국에서 출생한 선천적 복수국적자였으나 장교 복무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복수국적자가 일반 사병이 아닌 장교로 복무하려면 외국 시민권을 포기해야 한다. 이 씨는 가족을 설득해 장교로 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복수국적자임에도 국방의무를 다하고자 입대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김건호 삼양홀딩스 전략총괄사장이 삼양그룹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미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삼양홀딩스 제공

    김건호 삼양홀딩스 전략총괄사장이 삼양그룹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미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삼양홀딩스 제공

    이 씨뿐 아니라 현대, SK, 한화, 삼양그룹 등 주요 대기업 자녀들 중에서 장교로 복무한 이를 꽤 찾아볼 수 있다. 삼양그룹 4세인 김건호 삼양홀딩스 전략총괄사장은 한미연합사령부 미8군에서 통역장교로 근무한 바 있다. 삼양홀딩스 김윤 회장의 장남인 김 사장은 2014년 삼양그룹에 입사해 해외팀장 등을 거쳐 삼양홀딩스 글로벌성장팀장으로 일한 뒤 2023년 12월 사장으로 선임됐다. 김 사장은 지난해 삼양그룹 창립 100주년을 맞아 김윤 회장이 단행한 사업구조 재편 이후 화학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2005년 ROTC 43기로 임관해 육군 제701특공연대에서 복무한 후 중위로 전역했다. 

    방산 기업으로 출발한 한화는 재계 오너 가문 중에서도 장교 출신이 많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미국 하버드대 졸업 뒤 2006년 공군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해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역시 예일대를 졸업한 뒤 공군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김승연 회장, 동생인 빙그레 김호연 회장, 누나인 김영혜 씨도 모두 공군장교 출신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는 여성으로서 드물게 장교로 복무했다. 최 씨는 2014년 해군사관학교 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해 2015년 청해부대, 2016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복무하고 중위로 전역했다. 함정승선 장교는 해군 장교 중에서도 가장 힘든 임무에 속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맨 앞)는 2014년 11월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맨 앞)는 2014년 11월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뉴스1

    “조직 관리나 행정 경험도 도움 될 것”

    장교 복무 경험은 재계 오너 자녀들이 공적 리더십을 기르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민정 씨는 군에서의 경험이 헬스케어 기업 인테그랄 헬스 창업에 영항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다. 7월 미국 뉴욕 지역 언론 ‘더 버펄로 뉴스’와 인터뷰에서 “군 복무 중 동료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겪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경험했다”며 “이후 정신적 위기에 몰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사명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인테그랄 헬스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단일 조선소 기준 수주량 세계 1위 HD현대중공업을 이끄는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도 장교 경험을 비즈니스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1월 경남 진해에서 훈련받는 해군 ROTC 후보생들에게 특식을 보내 격려하고, 3월엔 미 해군사관학교의 선체 구조 강의 현장과 유체역학 연구실을 방문해 교수진, 생도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재용 회장의 장남인 이 씨가 배정받을 통역장교의 경우 복무하면서 다양한 해외 네트워크도 쌓을 수 있다. 김동관 부회장은 공군장교로 복무하던 2009년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와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회담에서 통역 보좌를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장교는 복무 기간은 길지만 병역의무를 다하는 동안 리더십 함양은 물론, 조직 관리나 행정 업무도 경험할 수 있다”며 “개인의 커리어 측면뿐 아니라, 재계 오너 일가가 한국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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