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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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으로 책임은 강화됐지만 명확한 이행 기준 없어 답답”

긴장한 기업들 현장 안전 점검 총력전… 시행 3년에 산업재해는 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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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5-09-0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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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됐지만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GETTYIMAGES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됐지만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GETTYIMAGES 

    “사실 지금도 현장 안전 점검을 나와 있다. 물론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만, 지금은 다른 업무를 다 제쳐두고 현장에 나가는 형국이다.”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건설업계 한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건설업을 중심으로 국내 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감돈다. 취재에 응한 건설업·제조업계 관계자들은 “현장 안전 점검은 주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해당 사건 이후 안전에 신경 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전 임원이 현장에 나가려 한다”며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기업 안전관리 부실에 따른 중대재해인지, 작업자 부주의로 인한 사고인지 원인을 조사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요즘은 사망자가 나오면 바로 중대재해로 간주되는 분위기라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넘었지만 현장 재해자는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2024년 산업현장 재해자는 14만2771명으로, 2018년 이후 최대치다(그래프 참조). 사망자도 줄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중처법 위반 사건(125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73%가 아직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무제한 보완수사 요구’

    중처법은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최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부상이나 직업성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가 숨진 사고와 2020년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등 대형 참사를 계기로 10만 명 넘는 국민청원이 뒤따르며 제정됐다. 그러나 시행 3년이 지난 현재도 산재는 줄어들지 않았다.

    실제 처벌 사례도 제한적이다. 중처법 사건 무죄율은 10.7%로 일반 형사사건(3.1%)의 3배, 집행유예율은 85.7%로 일반사건(36.5%)의 2.3배 수준이었다. 유죄 판결이 나온 49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평균 형량은 1년 1개월이었고, 42건은 집행유예로 마무리됐다. 법인 평균 벌금은 7280만 원으로, 법정 상한선(법인 50억 원, 사업주 10억 원)에 크게 못 미쳤다.



    산재 사건 수임 및 기업 자문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은 법 시행 초기 단계라는 점과 집행력 부족을 지적했다. 조재민 법률사무소 조안전 대표변호사는 “법 시행 전엔 산재 신고 없이 공상(사업주와 근로자 간 구두 합의로 산재 신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은 법이 보장하는 산재 범위가 늘어난 결과일 수 있다”면서도 “실제 사건에서 검찰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보완수사를 계속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업종별 필수 안전예산 도입해야

    법조계에서는 중처법이 사업주의 실질적 책임을 강화한 법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처법 제정 이후 대표이사 구속 여부가 화제가 됐고, 1호 사건인 삼표그룹 사고에서는 하청업체 대표와 그룹사 회장까지 경영책임자로 인정돼 형사기소됐다. 그럼에도 요지부동인 산재 발생 건수에 정부는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중심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은 결정적 수단이 못 되는 것 같고 기업들의 안전 관련 지출이 늘어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기업들이 답답해하는 지점은 강화된 책임에 비해 명확한 이행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중처법 제4조는 “사업주가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과 자원을 어느 수준까지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어 안전관리 시스템이 기업별로 제각각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안전모·안전화 착용을 강조해도 모든 위험 요소를 통제하긴 어렵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혼란을 지적했다. 신혜원 법무법인 율린 변호사는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중소기업은 안전 점검이나 교육을 얼마나 촘촘히, 깊이 있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며 “위험관리를 고민하는 기업은 그나마 여유가 있는 곳이고, 대부분은 가이드라인을 고민하기만 해도 다행인 수준”이라고 전했다. 조재민 변호사는 “작업별 위험 요소를 정리해둔 대기업이라 해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나면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설정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현행법에도 활용할 만한 장치가 충분히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점검하는 틀이 있고,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중소기업을 위한 안전보건관리 자율점검표를 배포했다. 그러나 모두 권고에 그칠 뿐 법적 의무는 아니다. 신혜원 변호사는 “현장에선 안전화·안전모·안전띠 등 기본적인 조치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잖다”며 “법이 먼저 구체화돼야 기업들이 주의 의무를 지키고 현장에도 속도가 붙는다”고 말했다. 조재민 변호사도 “지금까진 안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의무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업종별 평균 안전예산을 기준으로 최소 집행 수준을 강제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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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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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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