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380억→630억원 증액
“반전세 보증금을 올려 달라는 집주인 성화에 목돈 마련이 쉽지 않았는데 연 2%대로 1000만원 ‘긴급자금대출’ 을 받아 겨우 한고비 넘겼어요.”
최근 70대 이모 씨가 기자에게 전해 온 내용 중 일부분 입니다. 그는 지난달 ‘급전 창구’로 불리는 국민연금공단의 긴급자금대출(실버론)이 조기 소진되면서 힘들다고 하소연 한 바 있습니다.
은퇴족 ‘급전 창구’로 불리는 국민연금공단의 실버론이 지난 7월 9일 신규 대출접수가 중단되면서 원성이 높았는데요. 최근 정부가 신속하게 실버론 재개 소식을 알렸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실버론 사업 예산을 기존 380억원에서 630억원으로 증액하는 ‘2025년도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을 심의·의결하고 사업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기금운용계획 변경으로 8월 둘째 주부터 신청·접수가 또 다시 시작됐습니다.
급전이 필요할 때 주로 이용하는 카드론의 경우 연 이자가 17%에 달하지만 실버론은 2%대 저금리로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어 노년층 서민들에게 ‘감로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연간 국민연금 수령액의 2배 이내에서 최대 1000만원의 실사용 비용을 빌릴 수 있는데요.
이자율은 분기별 변동금리로 5년 만기 국고채권 수익률과 예금은행 가중평균 수신금리 중 낮은 금리가 적용돼 올해 3분기 기준 연 2.51%입니다. 시중은행의 시니어 전용상품에 비해서도 절반 수준입니다.
금리가 지난해보다 낮아진데다 이제는 기초생활수급자도 대상에 포함되는 등 대상자가 증가하면서 신청자가 늘어 올해 예산 380억원이 조기 소진됐습니다.
이와 관련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에 마련한 재원으로 고령층에 대한 긴급자금 지원이 재개된다”며 “앞으로도 연금수급자의 노후생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예산이 조기 소진돼 접수가 중단되고 이후 추가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재개하는 구조가 3년째 반복되고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9월에 예산이 조기 소진돼 추가예산을 편성한 뒤 12월에 재개한 바 있습니다.
국민연금 공단에 따르면 실버론 이용자들의 주된 용도는 전월세 보증금 마련이 2968건(236억6400만원)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전체 건수의 55.1%, 금액의 67.9%를 차지합니다.
그 뒤를 의료비 2351건(105억9700만원), 배우자 장제비 47건(4억1900만원), 재해복구비 18건(1억6600만원) 등의 순이었습니다.
실버론은 국민연금 수령액에서 원리금을 자동상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노후자금을 ‘일찍 당겨쓰는’ 방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연금 수령액은 실버론 신청 당시 최종 지급받은 연금을 기준으로 합니다.
가령, 연금이 월 45만원이고, 의료비가 500만원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개인별 한도액은 연간 연금 수령액(월 45만원×12개월=540만원)의 두배인 1080만원이지만, 최대 한도는 1000만원이기 때문에 이 한도 내에서 실제 소요액인 500만원을 빌릴 수 있습니다.
향후 최대 5년 원금 균등분할 방식으로 거치 1∼2년을 선택할 경우 최장 7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습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이자율이 시중보다 낮은 편이고, 신청하고서 대부분 하루 이틀 사이에 바로 빌릴 수 있습니다.
다만, 단순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용도로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긴급자금 지원이라는 취지에 따라 ▲전·월세 보증금 ▲의료비 ▲배우자 장례비 ▲재해복구비 등 특정 용도로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실버론 이용 전에 신청기간 정도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데요.
전·월세 보증금은 임차개시일 전후 3개월 이내(갱신계약은 갱신계약일로부터 3개월 이내)이며 의료비는 처방일로부터 6개월 이내 신청해야 합니다. 배우자 장제비는 사망일로부터 3개월 이내, 재해복구비는 재해발생일 또는 재난지역 선포일로부터 6개월 이내여야 합니다.
신청자는 각 대출 용도에 따라 전·월세 계약서, 진료비 계산서, 사망 진단서, 피해 사실 확인서 등을 제출하면 됩니다.
일각에서는 실버론이 급전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결국 국민연금이라는 노후자금을 담보로 실행되는 대출상품이라는 점에서 노인 빈곤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편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데요.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약 3배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