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미술여행 - 31] 아테네 국립 미술관 & 굴란드리스 미술관
5월 환상적인 날씨에 만난 아테네 여행을 복기해봅니다. 5월에는 매주 여행을 떠나느라 가방을 싸고 푸느라 정신없었던 시기였어요. 그리스 여행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단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이렇게 더럽고 정신없는 도시가 유럽에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습니다. 올 여름 10개 이상의 도시를 돌면서 온갖 사건사고를 다 겪고 있습니다. 무사히 서울에 돌아가야할텐데 쉽지 않네요.
저는 대책없는 대문자 P입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여행을 떠나는 게 성격상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5~6월에는 매주 다른 도시로 떠나다보니 여행 준비를 그냥 포기하게 되더군요. 구글 제미나이가 짜주는 여행계획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가장 유명한 곳만 한두 곳을 가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미술관에서만 보냈습니다. 미술관에선 하루를 계획없이 보낼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습관적인 루틴이 있는데요. 여행 첫날에 가급적 가장 높은 뷰 맛집에 올라가보는 겁니다. 저는 소문난 길치지만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한 번 조감해보면, 험난한 길 찾기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면 못난 그 어떤 도시도 구름의 높이에서 보면 아름답습니다. 붉은 지붕 집들이 빼곡한 아테네도 멀리서보니 근사하더군요.
아테네에서는 첫 날 일몰 시간에 필로파포스 언덕에 올랐습니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 아크로폴리스가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서 그리스인 10여명이 옛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홀로 신들의 도시를 찾은 저에게 이 도시가 준 신비한 선물이었습니다.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로 부르는 그 신비로운 노래는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 근사한 기억을 남겨준거죠.
저는 고대유적과 문화유산에는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테네의 여행 일번지인 국립 고대 박물관에서도 하품을 하며, 관람을 했을 정도입니다. 저는 회화 예술을 편애하고, 건축을 좋아합니다. 그런 저에게도 수천년 전 유물로 가득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흥미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이 도시의 역사를 꽤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였습니다.
수천년동안 아크로폴리스 인근에서 발굴된 도자기와 수많은 크고 작은 조각상들은 고대 그리스를 향한 유럽의 경외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지혜와 전쟁의 신인 아테나가 수호신인 도시답게, 아크로폴리스에서도 이 박물관에서도 아테네 여신의 조각도 셀 수 없이 만났습니다.
이 박물관이 세워진 이유가 있습니다. 18세기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면서 고대의 유물을 기념품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 주재 영국 대사인 엘긴 7대 백작 토마스 브루스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으로부터 아크로폴리스 조사를 위한 허가를 얻은 끝에 체계적인 약탈을 했습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엘긴마블스의 정체입니다.
이 사건을 겪은 뒤 1834년 새로 설립된 그리스 국가는 아크로폴리스에 흩어져있는 유물을 수집, 보존 및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마침내 1863년 파르테논 신전 남동쪽에 박물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죠. 박물관은 1874년에 완공되어 아크로 폴리스의 발굴 유물을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현대식 건물은 공간 부족으로 2009년에 세워진 신관입니다. 이 곳 카페에서 올려다보는 아크로폴리스는 정말 장관입니다.
국립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그 나라의 흥망성쇠와 경제력을 냉정하게 알게 됩니다. 과거 영광의 시절을 컬렉션으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 미술관이기 때문입니다. 2만여점의 컬렉션을 보유한 아테네 국립 미술관은 화려하고 거대한 미술관은 아니었습니다.
1900년 저명한 화가 게오르기오스 이아코비디스(Georgios Iakovidis)가 수석 큐레이터로 임명되면서 운영되기 시작한 이 미술관은 비잔틴 시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그리스 회화 예술의 보고입니다. 기부 덕분에 소장된 서유럽 회화의 컬렉션도 소수 소유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그리스 예술가들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미술관입니다.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스인’이라는 별칭인 엘 그레코로 불렸던 화가입니다. 유럽의 어느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는 거장 엘 그레코는 고국에서 자신의 본명을 되찾았더군요. 테오토코풀로스 도메니코스(1541~1614)의 작품은 세 점이 전시 중이었습니다. <성 베드로의 초상화>, <그리스도의 무덤>,<천사들의 콘서트>입니다.
<천사들의 무덤>(1608-14)은 놀랍도록 근대적 특징이 가득 숨어 있는 작품입니다. 그레코가 1614년 톨레도에서 죽기 직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미완성 상태로 남겨졌죠. 천사들이 날개가 없이 묘사됐고, 인물의 움직임은 근대 회화처럼 빠른 붓놀림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천사들의 옷은 불꽃처럼 소용돌이 칩니다. 무지개빛으로 다채롭게 묘사된 옷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 것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표현주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시대를 앞선 작품입니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종교화와 초상화, 지중해를 그린 풍경화의 행진 끝에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나타납니다. 1862년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의 오톤왕이 폐위를 당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부터 정치적 변혁과 함께 예술에서는 니케포로스 리스트라스, 니콜라오스 기지스, 게오르기오스 이아코비디스, 콘스탄티노스 볼라나키스 등 ‘뮌헨 학파’가 등장해 그리스 회화의 전성기를 엽니다.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습니다.
19세기 그리스 미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니콜라오스 기지스(Nikolaos Gyzis, 1842~1901)는 초상화, 풍속화, 정물화, 종교화까지 놀랍도록 다채로운 장르의 회화를 남겼습니다. 장르뿐 아니라 일생동안의 화풍의 변화도 혁신적이었죠.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시기를 거쳐, 장식적 요소가 넘치는 후기의 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정착해 활동하며 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친 화가입니다. 뮌헨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주제는 그리스 민족성과 신앙, 영적 세계를 탐구하는 작품에 집중했습니다. 그리스의 200드라크마 지폐에 새겨진 그림이 그의 <비밀학교>입니다. 신비로운 소녀를 그린 <위시본>(1878)은 그리스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초상화였습니다.
미술관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대작 <서약>(1886)은 어린 소녀가 어머니의 인도와 지지를 받으며 외딴 예배당으로 서약을 이행하기 위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죠. 낭만주의의 특징을 보여주는 이 그림에는 처절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두 모녀의 곁에서 곧게 세워진 검이 눈길을 끕니다. 서약을 상징하는 이 검을 통해 소녀의 비극적인 사연을 짐작하게 하죠. <서약>은 헌신, 희생, 가족애를 상징하는 이야기를 담은 19세기 그리스 미술사에서 가장 찬사를 받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키스를 주제로 다룬 명작들은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클림트의 키스를 비롯해 밀라노에서 만났던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도 있죠. 하지만 그리스에서 만난 이 그림만큼 재미있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란히 걸려 있는 리트라스 니케포로스(Lytras Nikephoros, 1832~1904)의 작은 두 점의 그림은 각각 <기다림>(1895-1900)과 <키스>(1878 이전)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끝에 키스를 하게 됐을 거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키스>가 먼저 그려진 그림입니다.
연인과 입맞추는 소녀의 그림 옆에는, 소녀의 애타는 기다림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소녀는 뒷꿈치를 든 동일한 자세로 목을 길게 내밀고 있습니다. 창문을 사이에 둔 다급한 키스는 두 연인의 관계가 비밀스러운 사연을 숨기고 있음을 짐작케합니다.
그림 속 냄비 속의 백합은 순수함을 상징하고, 버려진 슬리퍼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서두르는 소녀의 모습을 암시하죠. 동시에 연인을 숨죽여 지켜보는 우리를 그림의 일부로 만드는 장치가 됩니다.
현대미술 컬렉션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작가는 야니스 모랄리스(1916~2009)입니다. 한 눈에도 ‘그리스의 피카소’란 별명이 붙을 법한, 추상화의 선구자입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주제로 삼았던 그는 아테네 미술 학교 학장으로 많은 예술가를 길러내 그리스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화가입니다. 사후에 많은 작품을 이 미술관에 기부해 누구나 이 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나란히 걸린 <장례식 작곡 1>과 <러브 신>을 보면 화풍의 변천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름을 읽기조차 힘든 낯선 화가들을 통해 그리스라는 나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린 근대 부르주아의 일상, 눈이 부신 지중해의 바다와 같은 그림들은 아테네가 아니면 탄생할 수 없을 것 같았죠. 신들의 도시에서, 저는 너무나 인간적인 화가들을 만났습니다.
아테네 국립 미술관은 유럽의 ‘국립’ 미술관들과 비교할 때, 유럽 미술의 컬렉션이 양에서나 질에서나 약한 편입니다. 이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미술관이 바질 앤 엘리스 굴란드리스 재단 미술관(Basil & Elise Goulandris Foundation)입니다. 그리스 최고의 근대 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곳이죠.
바질과 엘리스 굴란드리스 부부는 1950년대부터 저명한 역사학자와 미술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걸작들을 수집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과 미적 기준을 가지고 50여년 동안 헌신적으로 컬렉션을 구축했고 미술관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습니다.
세잔, 반 고흐, 고갱, 모네, 드가, 로댕, 툴루즈 로트렉, 보나르, 피카소, 브라크, 레제, 칸딘스키, 미로, 자코메티, 발튀스, 폴록, 베이컨, 리히텐슈타인, 보테로 등 거장들의 전성기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리스 유일의 미술관이 됐습니다.
미술관 로비에는 인상적인 작품이 하나 걸려 있습니다. <E.B.G.의 초상(Portrait de E.B.G.)>은 마르크 샤갈이 1969년에 그린 그림입니다. 밝고 화려한 색채의 이 초상화는 샤갈이 우정의 이미를 담아 굴란드리스 부부에게 선물해 이 미술관에 걸리게 됐습니다. 그리스를 넘어 유럽의 미술계에서 굴란드리스 부부가 어떤 영향력을 자랑했으며, 예술가와 얼마나 깊이 교류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인 셈입니다.
런던에 살면서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를 찾아가 미술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의 지난 이야기는 다음 주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museumexpress.stib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