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와서 가장 처음으로 느낀 문화적인 차이는 뭐였어요?”
미국에서 수업을 듣는 대학교에서 같은 학교 대학생들과 국제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 친구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해야하는 것”이라고 답을 했었다. 미국 사람들은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는데, 이것이 초반에는 참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먼저 인사를 해 주면 당연히 같이 인사를 하게 되곤 하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전혀 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언제쯤 눈을 맞추고, 언제쯤 인사를 해야하는지 타이밍을 맞추기가 은근히 쉽지 않았다. “안녕(Hi)”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하지만 목소리는 얼마나 커야 할지, 손을 들고 흔들기까지 해야하는 것일지, 짧게나마 고민을 하곤 했다.
반대로 내 답을 들은 미국인 대학생은 “나는 길거리에서 인사를 하지 않는 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부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아이 어른 상관 없이 항상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해 온 이들에게는 오히려 인사를 하지 않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만약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거나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많이 당황할 것 같다. 혹시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이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싫어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나를 당황하게 했던 이 문화적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극복이 되었다. 이제는 되려 급히 지나가느라, 혹은 나같은 외국인이라서 인사를 하지 않고 휙 지나가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색해지곤 했다. 사실 초반 ‘적응기’를 겪으면서도 상대방에게 먼저 미소와 함께 인사를 받고 나면 쑥쓰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라도 미소를 짓다 보면 덩달아 기분도 마음도 많이 누그러졌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이 유독 인사에 후한 이유를 찾아보니, 건국 초기 이민자들이 정착하던 시기에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서로를 경계하기 보다는 열린 태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기본적인 신뢰와 친절을 보여주는 것이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오히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이 무관심이나 냉정함으로 보이지 않도록, 이웃에게 ‘나는 너의 적이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일환으로 인사를 한다는 해석도 있었다.
역사적·문화적인 배경을 떠나 미국의 인사문화가 나에게 더욱더 깊은 인상을 주게 된 배경은 우리 가족들의 변화 때문이다. 옛 어른들에게 ‘인사만 잘해도 복이 절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지만 사실 나 역시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에게 조차 먼저 인사를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어렸을때 낯을 참 많이 가렸던 나(엄마)를 닮아 아이들도 어른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지 못하고 뒤로 숨곤 해 할머니들에게 잔소리를 꽤나 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인사를 하는 미국의 문화 덕에 꾸중과 잔소리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아이들도 하루종일 들려오는 ‘하이(Hi)’소리에 개미만한 목소리일지언정 같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잠시라도 머물게 되면 간단한 인사와 안부를 묻는 ‘스몰 톡’(Small Talk) 은 아이들의 변화에 불을 지폈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다 우리 가족을 발견한 이웃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안부를 먼저 묻고 난 후에 아이들은 이 할아버지와 강아지를 만나 인사를 하기 위해 동네를 쏘다녔다. 며칠 안보이면 ‘XX 할아버지랑 강아지는 잘 있을까?’ 궁금해하곤 했다. 놀이터에서 모르는 친구들이 다가오면 피하기 일쑤였던 아이들이 스스럼 없이 모르는 친구들과 놀기 시작한 것도 동네 이웃들이 끊임없이 건네는 인사와 안부에 단련 된 이후였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주변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아이들을 보며 이미 이곳에서는 일상으로 자리잡은 인사 문화가 참 부러워졌다. 짧은 미국 생활이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당분간은 인사 없이 스쳐 지나가는 원래의 문화가 당황스러워 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문화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인사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조금 더 자주 눈을 맞추고 더 자주 인사를 해보고싶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