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베트남 - 343] 미국의 주유소에 들르면 “이 연료에는 최대 10%의 에탄올이 포함돼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환경 보호를 위한 단순한 친환경 정책 같지만, 사실 이 짧은 문구 뒤에는 미국의 농업, 에너지, 정치가 교차하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습니다.
2005년 제정된 에너지정책법에서 재생연료 의무 혼합제도가 도입된 이후, 미국은 전국적으로 휘발유에 일정 비율의 에탄올을 섞는 것을 강제해 왔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 시행된 이 제도는 2007년 에너지 독립·안보법을 통해 기준이 대폭 강화되었고, 그 결과 2010년 이후 미국 주유소의 95% 이상은 에탄올 10%가 혼합된 휘발유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책의 본질은 단순히 환경을 위한 친환경 시도가 아닙니다. 미국은 전 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약 30~35%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생산국으로, 특히 아이오와, 일리노이, 네브래스카 등 중서부 지역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으로 유명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면적이 전부 옥수수로 덮여 있고, 실제로 현장을 방문하면 그 밀집도와 스케일에 압도당할 정도입니다. 이런 환경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위험을 낳기도 합니다. 옥수수밭은 미로처럼 빽빽해 방향 감각을 잃기 쉬워, 실제로 미국에서는 옥수수밭에 잘못 들어갔다가 실종되거나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종종 보도됩니다. 몇몇 사건은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고, 이런 특성 때문에 옥수수밭은 미국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케일 뒤에는 훨씬 더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매년 엄청난 양의 옥수수가 생산되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과도해 가격 폭락과 재고 누적이 반복되는 구조적 과잉 문제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 중 하나가 바로 휘발유에 옥수수 기반 에탄올을 섞어 소비를 강제하는 정책입니다. 에탄올 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해 과잉 생산분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중동 원유 의존도를 줄이고 탄소 배출 절감이라는 ‘친환경 명분’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삼조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정책이 중서부 농업 벨트 표심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계산과도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아이오와와 일리노이 같은 옥수수 주는 미국 대선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며, 에탄올 정책은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정책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셰일 오일 혁명으로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도약한 이후에도, 에탄올 혼합 정책만큼은 공화·민주 양당 모두 사실상 성역으로 두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제 이 미국산 옥수수가 동남아시아로 흘러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내년부터 모든 휘발유를 에탄올 10%가 혼합된 연료로 전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베트남 산업통상부가 제출한 제안서에 따르면, 현재 사용 중인 RON95와 RON92 무연 휘발유는 모두 E10으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을 넘어 미국과 베트남 간 무역 전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해 베트남과의 교역에서 약 123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베트남은 미국의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과잉 생산된 에탄올과 옥수수의 수출처를 확대하고, 베트남 입장에서는 미국산 제품을 적극적으로 수입해 무역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셈입니다.
베트남은 이미 지난 3월 에탄올 수입 관세를 10%에서 5%로 낮췄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이 미국산 제품을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며 정책 추진에 속도를 붙였습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베트남의 미국산 수입액은 전년 대비 22.7% 증가한 105억 4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여기에 연료와 옥수수는 아직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베트남에는 연간 60만㎥의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는 6개 공장이 있지만, 이는 전체 수요의 40%에 불과합니다. 결국 나머지 60%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미국산 옥수수 기반 에탄올이 베트남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가능성이 큽니다. 동시에 베트남 정부는 이번 조치가 탄소 배출을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베트남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연료 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농업·무역 이해관계와 베트남의 에너지·환경 전략이 맞닿은 복합적 전략의 산물입니다. 미국은 남아도는 옥수수를 해소하고 농업 벨트의 표심을 지키며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베트남은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를 통해 무역 수지를 개선하고 탄소중립 목표라는 국제적 약속을 동시에 이행할 수 있습니다. 끝없는 옥수수밭에서 시작된 정책이 이제 동남아시아의 에너지 시장까지 흔들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