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컬리 정산주기 20일로 줄이면 중소 납품사 30% 퇴출 위기

쿠팡·컬리 정산주기 20일로 줄이면 중소 납품사 30% 퇴출 위기

유엄식 기자
2025.10.23 18:10

서울대·가천대·한양대 합동 연구팀 분석 보고서 발표..재고비 감축 위해 주문 축소하면 중소 납품사 매출 타격

서울 중구 한 쿠팡 차고지에 배달 차량이 주차돼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중구 한 쿠팡 차고지에 배달 차량이 주차돼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정산주기를 줄이는 개정 법안이 추진되면 오히려 정책 의도와 달리 중소 납품업체 피해가 커질 것이란 연구 분석 결과가 나왔다. 플랫폼의 재고비 등 운영 자금 부담이 늘면서 상품 발주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납품하는 중소업체의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단 이유에서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벤처창업학회 주최로 열린 '정산주기 단축 규제의 경제적 영향 토론회'에서 유병준 서울대 교수와 전성민 가천대 교수, 강형구 한양대 교수로 이뤄진 합동 연구팀은 국내 주요 플랫폼의 정산주기 단축이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국내 주요 직매입, 중개형 이커머스 플랫폼을 대상으로 총 1년간 정산주기 90일과 20일 시나리오를 설정해 시간이 지날수록 납품 업체, 입점 소상공인, 유통업체, 소비자 등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산주기를 현행 60일에서 20일로 단축한 1년 뒤엔 약 74%(최소 67.7%~최대 80.2%)의 중소 납품업체만 생존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약 30%의 중소 납품업체는 거래가 끊겨 도태될 수 있단 의미라고 연구진을 설명했다. 특히 운전자본 하위 50% 플랫폼에선 평균 48%의 업체만 생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영향으로 시장에서 도태된 중소업체의 피해액은 연간 최대 21조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직매입 플랫폼의 피해액도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커머스는 물건을 직접 사들여 재고를 관리해서 판매하는 직매입 플랫폼과 입점 업체가 플랫폼에 상품만 등록해 직접 재고관리를 하는 중개형 플랫폼으로 나뉜다. 쿠팡과 컬리, 쓱닷컴 등이 대표적인 직매입 플랫폼이고 네이버를 비롯해 11번가, 지마켓 등이 중개형 플랫폼으로 분류된다.

정산주기 단축에 따른 거래액 감소는 직매입 플랫폼이 중개형 플랫폼보다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직매입형 플랫폼의 주간 거래액은 종전 연간 거래액 대비 1년간 13.9% 감소됐다. 이에 따른 거래 손실액은 약 7조7000억원으로 추정됐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중개형 플랫폼의 연간 거래 손실액은 1조9000억원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7월 티몬·위메프(이타 티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 피해자들이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환불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제공=머니S
지난해 7월 티몬·위메프(이타 티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 피해자들이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환불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제공=머니S

연구진은 "정산주기 단축에 따른 비용 압박이 증가하면, 플랫폼 기업은 재고비용의 감축을 위해 상품 수와 종류를 소량만 확보하게 된다"며 "다양한 품목과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는 대기업과 달리 자원이 한정된 소상공인 상품 발주량을 크게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 선택과 서비스 품질 저하로 연간 19조원 규모의 사회적 후생(Social welfare) 손실이 발생할 것이란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해외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60일 정산주기를 유지한 유럽의 최대 소매산업 민간기구 유로 커머스(EuroCommerce)는 "정산주기를 30일로 축소하면 소비자 선택폭 감소 등으로 유통기업에 1500억 유로 이상의 피해를 미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도 "정산주기 단축 피해가 연쇄적으로 확산될 것"이란 목소리가 제기된다.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와 중소상공인의 상생을 위해 플랫폼 모델(직매입·중개) 및 업체의 재무 능력(운전자본 수준) 등에 따라 예외·유예를 두는 '차등적 정산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연구 결과처럼 상품 다양성이 줄어들고 서비스 품질까지 저하돼 결국 소비자 후생 손실이 발생한다면 규제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정책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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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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