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삼성, 반격의 시간 ②근원 경쟁력에 집중, '삼성다움' 다잡기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반등은 '업의 본질'에 집중하는 이재용 회장의 승부수가 통하기 시작한 결과라는 평가다. 단지 AI(인공지능) 대전환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의 수혜를 입은 차원이 아니라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의미다.
주력 사업의 경쟁 심화로 위기설이 끊이지 않던 지난해 5월 이 회장은 비정기 인사에서 전영현 부회장을 반도체 사업 수장인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으로 전격 투입했다. 2017년까지 삼성 메모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베테랑을 다시 불러들인 파격 인사였다. 전 부회장은 같은 해 11월 메모리사업부장까지 겸하며 삼성전자의 최전선 지휘봉을 직접 잡았다.
이 같은 특단의 조치에는 삼성의 위기가 외부환경 탓이기 이전에 근본적 기술 경쟁력의 문제라는 이 회장의 판단이 깔렸다. 특명을 받은 전 부회장은 조직문화부터 바꿨다. 누구나 잘못을 초기에 제기할 수 있고 그래서 빠르게 드러내놓고 해결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극히 이례적 사과문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전 부회장은 꼭 1년 전인 지난해 3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사상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메모리 사업 영업이익을 역전당하자 처절한 반성문을 내고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고 했다.
이후 1년은 고객 중심 전환과 기술 경쟁력 회복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조직의 모든 판단을 현장과 고객 입장에서 판단하도록 조직구조를 단순화하고 경쟁력의 원천인 설계 역량 강화에 주력했다. HBM(고대역폭메모리) 개발팀을 신설하고 설계 전문가를 대거 승진시켰다.
실제 회사 내부 기운도 달라졌다. 세계 1등을 일궜던 삼성 반도체 고유의 치열하게 토론하는 문화가 재건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많은 직원들이 "수년간 위축과 패배감을 경험하며 사기가 꺾여왔는데 요즘은 다시 한번 해보자는 기세가 살아나는 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날 발표된 임직원 대상의 성과연동 주식보상제도 이런 흐름에 상승효과를 더해 동기 부여를 극대화하겠다는 차원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이 회장이 사법 족쇄에서 9년여 만에 풀려난 점도 상당한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업에서 총수가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사업에만 쏟을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호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이다. 이 회장은 이달 '회장 취임' 3주년을 맞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이벤트 한번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보여주기보다는 내실에 방점을 찍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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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위기 극복과 재도약은 향후 1~2년이 분수령이다.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까지 내주게 된 뼈아픈 원인인 HBM 시장에서 역전을 노린다. 내년부터 대규모 양산이 시작될 6세대 HBM4의 경우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등에 샘플을 출하하고 퀄테스트(품질인증)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17% 수준인 HBM 시장점유율을 차세대인 HBM4에서 최대한 더 끌어올리고 그 다음 제품인 HBM4E 적용 시점에서는 선두를 탈환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재용 사업'으로 불리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시 오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 흑자 시대를 여는 발판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매년 수조 원이 넘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메모리 반도체보다 훨씬 시장 규모가 큰 파운드리에 줄곧 도전해온 이 회장은 최근 빅테크(초대형 첨단기업) 고객사를 연이어 확보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일단 전망은 밝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反) 엔비디아 진영에서는 선택지가 삼성전자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기업들과 계약이 이어지면 삼성 파운드리도 적자에서 벗어나는 걸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HBM 시장에서도 엔비디아 외에 다른 빅테크 고객사도 (AI 가속기 등) 개발을 추진하기에 삼성전자에도 기회는 계속 올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첨단 공정 수율(양품 비율) 끌어올리기 등 당면 과제에서부터 산업 생태계 활성화 등 중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숙제도 만만치 않다. 남일구 부산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TSMC는 산학연 연계로 자사의 파운드리를 오픈해서 대학에 제공하고 중소기업에도 자유롭게 개방한다"며 "반면 삼성은 폐쇄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런 생태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