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왜 어려운 사람의 대출 금리가 더 높을까.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다. 부부인 두 사람이 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원제:Poor Economics)에는 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쉽게 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 있다.
우선 은행 입장에선 이들에 대한 정보를 빠짐없이 수집하기가 어렵다. 만약 이들에 대한 대출 결정을 내리려면 더 많은 정보 확인이 필요하고, 연체 등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해 계속 예의주시하기 위한 비용이 생겨 이자를 높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원자들을 모아 만든 소액금융업체가 나선 이야기도 있다. 책에 소개된 인도 빈민 지역의 사례가 흥미롭다. 소액금융업체가 훨씬 더 저렴한 이자에 대출을 내주겠다고 해도 이들 중에 4분의 1만 대출기관에서 대출을 받고, 절반은 평소대로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대부업을 찾아갔다. 소액금융업체도 결국 연체관리를 위해 이들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고, 엄격한 규정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조를 보고 저자들은 이렇게 정리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을 제약하는 주된 요인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저렴한 대출금리는 대출 신청자가 제공하는 정보나 담보에 대한 대가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증기금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실제로 보증기금을 찾아간 이들은 보증기금이 너무 까다롭다고 하소연한다. 어려운 중소기업이라 쉽게 도움을 받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받아 저렴한 금리에 자금을 빌리기 위해선 사업자등록증부터 재무제표, 납세증명서, 소득금액증명원, 금융거래확인서 등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이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을 내줄 경우 이는 모두 해당 기관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은행의 경우 대출을 내준 자금은 수많은 고객과 기업의 예금이 기반인데 이를 함부로 내줘서도 안된다.
최근 국내에선 대출탕감, 신용사면이 잇따라 이뤄졌다. 이에 대해 은행 고위 관계자들한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코로나 등 특수한 점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넘어간다고 칩시다, 그럼 다음엔 어떻게 할 건가요." 또다시 연체가 생길 경우 또 탕감해주겠다는 것인지, 과연 이게 계속 감당 가능한 정책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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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이스평가정보와 한국평가데이터 신용평가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신용사면을 받은 286만7964명의 약 33%인 95만5559명이 지난 7월 기준 다시 연체자로 분류됐다. 그래서 일부 은행은 이들에 대한 금융정보가 아닌 비금융정보를 통해 파악하는 모형을 개발해 도입하고 있다.
책에는 선거철마다 대출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반복할 경우 은행이 아예 어려운 이들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대목도 있다. 당장 좋아보이는 정책들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선의의 정책이라도 지속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