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책임없는 유한책임회사]③
외부감사 확대 논의가 제자리걸음하는 사이 국내 산업계에선 유한책임회사를 향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현실에선 외감 면제용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다.
1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국 유한책임회사 설립등기 신청건수는 2012~2015년 150건을 밑돌다 2016년 334건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2020년엔 483건을 기록하며 고점을 찍었다.
2016년은 외부감사법(외감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정부·국회 논의가 본격화하던 해다. 대우조선해양 회계조작 사태로 추진동력이 붙은 이 법안은 신(新)외감법으로 불리며 이듬해 9월 국회를 통과했다.
신외감법 중 외감 대상을 기존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까지 넓히기로 규정한 조항은 2019년 11월 이후 시작하는 첫 사업연도부터 시행됐다. 12월 결산법인 기준으로 보면 2020 사업연도부터 유한회사에 대한 외감이 시작되는 셈이다.
유한책임회사 급증이 유독 신외감법 입법·시행과 맞물린 데다 과거 한국 내 법인을 유한회사로 설립·전환하며 외감 회피 논란을 빚은 대규모 외국기업이 연이어 유한책임회사로 갈아타면서 신외감법은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외국기업 중에선 명품 브랜드가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구찌코리아는 2020년 11월, 보테가베네타코리아·발렌시아가코리아는 2022년 10월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부쉐론·포멜라토 등을 취급하는 케어링와치앤주얼리코리아(옛 부쉐론코리아)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외감을 피할 경우 감사보고서 공시의무까지 벗을 수 있다는 법령상 이점은 유한책임회사로의 전환을 부추긴다. 특히 명품의 경우 수시 가격인상에 따른 소비자 반발 탓에 국내 법인 이익률과 해외 본사 배당이 민감한 문제로 떠오른 터다. 감사보고서상 기재사항인 기부금 규모도 외감을 면하면 숨길 수 있다.
다른 업종 역시 유한책임회사가 수두룩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아마존웹서비시즈(AWS)코리아·록시땅코리아가 주로 거론된다.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 테무의 한국법인 웨일코코리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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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책임회사로 외감을 면했다가 뒤늦게 재무건전성 논란이 불거진 전례는 우려를 더한다.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중심인 싱가포르 법인 큐텐은 2022년 2월 큐텐코리아를 유한책임회사로 설립, 이듬해 11월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유한책임회사를 인정하는 해외 주요국은 법인유형이 아닌 회사규모로 외감 의무를 부과하는 추세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큰 외국기업의 경우 본사 소재국의 감독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국내보다도 엄격한 회계감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잦다"며 "경영상 이유보단 국내에서 외감·공시를 회피하기 위해 유한책임회사 설립·전환을 택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유한책임회사는 2011년 상법 개정으로 2012년 4월 국내 설립이 허용됐다. 당시 정부는 '창업을 쉽게 하고 지배구조·이익분배 등을 자율화해 모바일·바이오·생명공학 등 차세대 지식산업에 적합한 창의기업 육성을 지원키 위한 것'이라고 제도 도입취지를 설명했다.
법원 등기현황에 따르면 국내 존속 중인 유한책임회사와 외국 유한책임회사는 지난 8월 각각 3767곳, 209곳으로 집계돼 5년간 각각 111.5%, 77.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