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자사주 처분과 경영권

[김화진칼럼]자사주 처분과 경영권

김화진 법무법인 YK 고문
2025.09.15 21:47
김화진|법무법인 YK 고문
김화진|법무법인 YK 고문

주식회사가 자기주식을 의무적으로 소각하게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자사주가 기업 총수의 지배력 유지에 활용되어 왔고 이 때문에 주식 저평가로 이어졌다는 생각에서다. 자사주가 지배력 유지에 활용될 수 있다는 생각의 근거는 자사주가 신주발행에 적용되는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임의로 제3자에게 처분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분쟁은 법률적 유무효 다툼일 수도 있고 자사주 처분을 결의한 회사 이사들의 책임 논의일 수도 있다.

회사의 경영권에 도전하는 측은 회사가 우호적 외부자에게 자기주식을 처분하면 불리해진다. 그래서 자사주 처분에 신주인수권에 관한 상법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상법은 자기주식 처분에 대해 신주발행 관련 규정을 준용하지는 않고 있는데 주식을 처분할 상대와 처분방법을 이사회가 결정하게 하는 규정만 둔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가 자기주식을 처분한다고 할 때 실제로 급히 매수인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계획에 없이 남의 회사 주식을 다량으로 취득해야 한다. 매수자금을 급히 마련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왜 남의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다. 그래서 취득에 필요한 자금의 차입금 이자는 물론 보전받아야 할 것이고 그 외의 비용도 있다. 자기 회사 주주와 이사회도 납득시켜야 한다.

환매약정을 하고 매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평소 친분관계, 거래관계가 있더라도 이렇게까지 해 주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매수인이 보험회사라면 새로 보험에 가입해 주든지, 뭔가 인사를 차려야 한다. 한편 자기주식을 매도한 후에도 회사는 안심할 수 없다. 이론상 갑자기 저쪽 편을 들 가능성도 있어서다. 그러면 약정을 할 때 미리 의결권 행사에 관한 확약을 하게 하는데 이 또한 아쉬운 사람이 부탁을 하는 처지면서 상대를 불신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자기주식이 제3자에게 양도되면 양도받은 제3자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서 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온다. 사실 자기주식을 일방적으로 특정 주주들에게만 매각할 경우에는 기존 주주들 간의 지분비율에는 변동이 없지만 새로 늘어난 의결권의 효과로 주주가 회사에 대해 가지는 지배구조상의 비례적 이익이 변동된다. 회사의 구조변경에 관해 주주들 간 견해가 대립되어서 표대결을 하게 되는 경우나 경영권 분쟁상황에서는 중요하다.

외국 입법례를 보면, 영국 회사법(Companies Act)은 자기주식의 처분에 주주의 신주인수권이 인정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사회는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정관의 규정이나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부인할 수 있다. 독일 주식법(Aktiengesetz)은 자기주식 취득과 처분에는 주주평등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규정한다. 독일의 유력한 학설은 자기주식 처분은 기존 주식의 개인법적 매매 거래이기는 하지만 신주발행이 발생시키는 주주의 권리보호 필요와 동일한 성질의 규범적 수요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판례와 학설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현행 상법의 해석상 자기주식의 처분에 신주발행에 관한 규정이 유추 적용될 수 없다고 볼 이유는 바로 상법 개정의 경과에 있다. 자기주식의 처분이 발생시키는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가 2006년 10월 4일 입법예고했던 회사법 개정안은 자기주식의 처분에 관해 신주발행절차를 준용하게 했다. 이 개정은 성사되지 못했고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은 입법자가 부정적 결정을 내렸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2004년 SK-소버린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결정은 "자기주식 처분이 현 이사들의 경영권 유지 또는 대주주의 지배권 유지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으로서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회사와 다른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등 경영권의 적법한 방어행위로서의 한계를 벗어난다면 주식회사 이사로서의 주의의무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해서 문제를 이사의 책임 관점에서 보았다.

KT&G도 2006년 칼 아이칸과의 분쟁 당시 보유하고 있던 9.6%의 자기주식을 우호세력에게 처분하려고 했는데 아이칸 측은 그렇게 하면 이사들의 충실의무 위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사외이사 전원의 자택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 위협이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KT&G는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경영권 방어행위에 대해 이사들의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전형적인 미국식 접근방법이다. KT&G는 당시에 이미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이었다. 주주환원율도 무려 96.09%를 기록했다.

이 문제는 입법자가 조만간 결론을 내리게 되겠지만 자사주 처분의 법률적 허용과 금지보다는 처분을 결의한 이사회의 의무와 책임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자기주식 처분에 신주발행에 관한 규정을 유추 적용하지 않는 판례와 하는 판례가 있다. 필자가 아는 한 3대 1이다. 입법적 해결보다는 이사회의 책임 차원에 맡기는 것이 나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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