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경영에 불만인 주주들은 주주총회에 와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소수 주주가 그렇게 목소리를 높일 때 "몇 주 가지고 계세요?" 하고 의장이 물으면 큰일 난다. 소수자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수자를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은 정치의 영역에서다. 그리고 정치에서의 소수자는 없다. 모두 다 1인 1표다. 소수자라기보다는 소수집단의 구성원이다.
실제로 주식회사에서도 표결을 할 때는 당연히 1주 보유 주주는 1표의 대우를 받는다. 그랬다고 화를 내는 주주는 없다. 총회에서 발언을 하거나 장외에서 의견을 표명할 때 1표라고 무시당하면 화를 내는 것이다. 즉, 주주의 지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이 점은 맞다. 그래서 회사는 주주가 1표 주주라도 잘 대해야 한다.
여기에 정치가 반영된다. 소수 주주는 회사에서는 1주 1표지만 선거에서는 1주주 1표다. 법률을 만드는 정치권이 이 점을 놓칠 리 없다. 삼성전자의 소수 주주는 한국 전체 유권자의 10%가 넘는다. 2024년 말 기준으로 1% 미만 주주가 516만210명이었다. 대다수 투표권을 가진 내국인 성인일 것이다. 정치가 단 한 사람의 국민에게도 눈치를 보고 배려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러다가 좀 엉뚱하게 회사의 이사회가 단 1주를 가진 주주에게도 상법의 충실의무를 지게 하자는 법안에 동의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수많은 주주는 각양각색의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다. 회사가 잘되고 주가가 올라야 한다는 데는 모두 한마음이지만 그러려면 경영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1주 주주에게도 충실의무를 지게 되고 그 주주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경영진이 소송을 당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주주들이 그에 수긍할까. 물론 그런 경우 소송에 이기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영진은 심리적으로 시달리고 경영에 집중력을 잃을 수 있다. 그런 법률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주주들간의 이해관계도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각자 약한 존재여서 생존을 위해서는 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래서 뭔가 공통점을 중심으로 그룹이 형성된다. 무리의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공통점을 공유하지 않는데 다른 이유로 우리 무리에 속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 가지 이유로 받아들여 주기는 하되 같은 대우를 하지는 않는다. 실천은 잘 안 되고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하는 가치관이 전 지구적으로 정착되었다. 이 생각이 너무나 강해서 모든 조직에 전파되었고 급기야 기여한 만큼 대가를 받는 자본단체인 주식회사 지배구조에도 스며들어왔다. 그러나 권리와 배려는 다른 것이다.
소수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인정하자는 것은 배려를 권리로 전환하자는 것과 어딘가 비슷하다.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 인정은 회사라는 단체를 매개로 주주들의 이익이 조정되기 때문에 무리가 없지만 개별 주주들에게 이사들이 법률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새로 주주들간의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예컨대 대다수 주주가 지지한 경영판단에 대해 한 소수 주주가 이사회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 소송은 개인적 손실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다른 주주들이 경영진을 도울 방법이 없으므로 경영진은 타격을 받게 되고 회사가 그 여파를 겪으면 다른 주주들도 손실을 부담한다. 승소하거나 화해한 소수 주주는 십중팔구 회사를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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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주주가 소송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극단적인 비유다. 그러나 상장회사에는 이론상 블랙록도 소수주주가 될 수 있고 강력한 헤지펀드도 소수주주다.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서는 어떻게 가능한가. 회사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적용되고 가동하는 경우는 소형 비상장회사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는 주주의 수가 적고 보유 주식 규모의 차이도 상대적으로 작을 뿐 아니라 소송의 결과가 회사 경영의 실책과 큰 상관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잘 보호된다. 그런 회사에서는 이해관계의 대립구도가 단순하다.
물론 회사가 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개별 소액주주는 회사의 자본적 기초에 기여하는 비중이 작지만 그룹으로서는 작지 않다. 나아가 회사의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즉, 회사가 만드는 제품이나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홍보대사다. 임직원과 같다. 여기서는 정치에서와 같이 1주주 1역할이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자기 회사 주주의 신뢰도 받지 못하는 회사는 성공할 수 없다. 주식회사 이사들이 법률적 책임과는 별개로 모든 소수 주주에게 경영상 책임을 지고 최대한의 배려를 해야 하는 이유 또 하나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