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거수기 이사회'가 해야 할 일

[김화진칼럼]'거수기 이사회'가 해야 할 일

김화진 기자
2025.03.17 14:15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군대와 병원과 주식회사 이사회는 심심해야 세상이 평안하고 좋다. 그런데 이사회가 심심할 정도라면 이사회가 굳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사회는 있어야 한다. 이사회가 있어야 이사회가 심심할 회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사회 자체는 대체로 사무적이고 따분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전 세계의 모든 이사회 멤버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대다수 회사는 하루하루 루틴으로 돌아간다. 언론에 오를 만큼 드라마틱한 일은 많지 않다. 그래서 회사의 이사회는 대체로 지루하고 천편일률적이다. 해외에서는 주식회사의 이사를 'Board Director'가 아니고 'Bored Director'라고 하는 농담도 있다.

별문제가 없기 때문에 모든 안건이 전원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그래서 이른바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이 생긴다. 별문제가 없어서 반대가 없기도 하고 우리나라 기업 운영의 특성 때문에 반대가 없기도 하다.

통상 이사회는 이사회 날 이사들이 모여서 안건을 설명받고 검토하고 결정해서 찬반의 표결을 하지 않는다. 사전에 안건에 관한 내부적인 스터디와 논의가 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조정이 이루어진다.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가장 큰 대목이 바로 여기다. 토의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부정적인 의견이 제기되고 경영진이 이사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결국 해당 안건은 보류되거나 폐기된다. 이사회에 아예 상정되지 못한다.

상정해서 부결될 가능성이 있는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는 회사가 있다면 사실 그 회사는 기획과 조정, 내부 소통에 큰 문제가 있는 회사다. 아니면 경영권 분쟁이나 내분, 헤지펀드와의 싸움 같은 비상 상황에 있는 회사다.

결국 이사회는 이사들의 사전 승인에 법률적 책임을 추가해 공식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열리는 셈이다.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거수기 이사회라고 비판한다. 그 비판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실제 대다수의 거수기 비판은 반대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고 어떤 내용의 안건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아니다. 이유 불문하고 100퍼센트 찬성은 그냥 나쁘다는 것이다.

회사의 사업이 잘되고 이사회가 잘 운영되어서 경영상의 문제가 없고 모든 안건이 승인되고 이사들은 심심하다면 이사회에 모여서는 크게 할 일이 없다는 말인데 이사회는 왜 자주 모여야 하는가. 그 이유는 정기적·의무적인 확인과 승인 사안을 다루는 외에 회사의 전략과 정책 논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예컨대 국제화 전략을 포함한 다양한 의제를 가지고 이사회를 열고 따로 워크숍을 가지고 현장을 방문하고 부산을 떨면 임직원도 관심을 가지고 경영진은 관련 프로젝트를 지원하면서 사안들을 점검하게 되고 더 생각하게 된다. 그런 주제가 중요한 목표로 설정은 되어 있었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회사 운영 때문에 미루어지고 있었다면 이사회가 주의를 환기하고 진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모든 나라의 법률, 모든 회사의 정관이 이사회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항목을 나열하고 있지만 뭔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항목은 없다. 따라서 이사회가 창의적으로 알아서 하면 되고 사실 주주들과 사회가 바라는 바가 그것이다. 그날그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점을 두기보다 이사회는 회사의 미래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사업의 국제화, M&A를 통한 성장전략 같은 주제가 우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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