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흔함 속의 은혜

입력 2025-10-22 03:02

다이아몬드 1만개 중 하나도 나오기 어렵다는 천연 블루 다이아몬드(Blue Diamond), 영국령 기아나(Guiana)에서 발행된 한 장뿐인 브리티시 기아나 1센트 마젠타 우표(British Guiana 1¢Magenta), 수천년에 걸쳐 압축된 남극의 푸른 얼음 안타르크티카의 블루 아이스(Blue Ice of Antarctica), 1741년 과르네리 델 제수가 만든 비외탕(Vieuxtemps) 바이올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과학 저술 노트를 모은 필사본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 이처럼 희귀한 것들을 본다면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에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속에선 그런 희귀함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 더 소중한 ‘흔함 속의 은혜’가 있다. 매일 아침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따뜻한 밥상, “잘 지내냐”는 아버지의 익숙한 전화 음성, “요즘 어떠냐”며 건네는 친구의 마음 인사, 버스를 기다리며 맞는 가을바람 냄새, 라디오에서 오랜만에 흘러나온 나의 옛 애창곡,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와 비 온 뒤에 풍겨오는 젖은 흙과 풀 냄새, 그리고 비 온 다음 날 아침의 맑은 공기 속에 스미는 작은 평안.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신발을 벗는 그 짧은 해방감이나 주인이 왔다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보여 주는 우리 집 강아지의 흔한 애교도 있다.

이런 순간들은 특별하거나 희귀하지 않다. 너무 익숙해서 감사하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로 이 평범한 순간들이 하나님이 주신 보편적 은혜(Common Grace)의 얼굴이다. 우리는 사실 이 소중한 것들에 둘러싸여 산다. 그리고 이 흔한 것들은 희귀한 것들보다 우리의 매일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던 시절,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앞서 인도했다. 특별한 은혜(Special Grace)였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시고 인도하신 기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 특별한 은혜는 멈췄다. 만나가 그쳤고 불기둥도 사라졌다. 대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씨를 뿌리고 땀을 흘려 거두는 삶을 주셨다.

우리는 종종 특별하고 희귀한 기적을 원한다. 주님은 분명 필요할 때 기적을 주신다. 그러나 특별한 기적만으로 살아가게 하시지 않는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주셨지만 가나안에서는 땅을 갈게 하셨다. 광야의 만나도 기적이고 오늘 우리가 먹는 한 끼의 밥도 기적이다. 그 밥 한 공기에는 햇빛을 비추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비를 내리신 하나님의 자비가 있으며 농부의 땀 속에 스며든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희귀한 다이아몬드나 단 하나뿐인 우표는 경이롭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것들이 아니다. 다정한 가족의 목소리, 식탁의 밥 한 숟갈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 하루가 세상 그 어떤 희귀한 것보다 더 귀하고 하나님이 친히 주신 가장 아름다운 은혜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 평범한 것들에서 주님의 숨결을 느끼고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범사의 일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스며 있다. 공짜로 주신 땅 물 공기, 가을 햇살,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성과 감성, 우리가 진정 감사해야 할 주의 은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한재욱 강남비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