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양측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UPI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를 겨냥한 직접 제재에 나선 가운데 유럽도 러시아산 에너지 차단을 포함한 추가 압박으로 대러 제재 전선을 구체화하고 있다. 서방은 다시 ‘압박을 통한 종전’ 전략에 무게를 싣는 모양새지만, 러시아 역시 양보할 뜻이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7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19차 대러 제재 패키지를 승인했다. 이번 패키지에는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가 포함됐다고 EU 순회의장국인 덴마크가 밝혔다. 애초 에너지 비용 급등과 산업 영향 등을 이유로 반대했던 슬로바키아가 입장을 선회하면서 지난주 잠정 합의됐던 제재안이 이날 최종 타결됐다. EU는 현재 서면 절차를 진행 중이며, 추가 이의 제기가 없으면 23일 오전 8시부로 자동 채택된다. LNG 금수는 단기 계약은 6개월 후 종료하고 장기 계약은 2027년 1월 1일부터 금지하는 방식으로 단계 시행된다. 이는 EU가 기존에 설정한 러시아산 가스 수입 중단 시점보다 1년 앞당겨지는 조치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EU는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동결 자산의 강제 압류 가능성을 포함한 제20차 대러 제재 패키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이와 별도로 우크라이나는 스웨덴의 최신형 그리펜 전투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스웨덴을 방문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2일 엑스에 “스웨덴산 그리펜 전투기를 대량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첫 의향서에 양국이 서명했으며 향후 계약을 통해 최소 100대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 중재 기조에서 벗어나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시작한 흐름에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쟁 종식 협의 회동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직후 러시아 대형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두 곳과 그 계열사 30여 곳을 추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행된 대러 직접 제재다. 이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서방으로부터 제공된 일부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사용 제한을 해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까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헝가리에서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을 추진하며 전쟁 중재에 나섰으나,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 측 요구인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전체 양보’에 호응한 듯한 정황이 알려지면서 유럽 동맹국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현 전선 동결을 조건으로 한 제안을 내놓았지만, 러시아가 반발하며 양국 외무수장 간 실무 협의가 결렬됐고, 대화 국면은 급격히 냉각됐다.
푸틴 대통령은 22일 전략핵전력 훈련을 직접 감독하며 고강도 무력시위를 벌였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이날 키이우 등 주요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대규모 미사일·드론 공격이 발생해 최소 6명이 숨지는 등 공습 수위도 올라갔다.
서방의 중재 창구가 사실상 닫히면서 휴전 가능성은 더 멀어졌고, 러시아의 군사 행동 수위까지 겹치며 긴장도는 다시 높아지고 있다.
알자지라는 “전쟁의 전망은 한마디로 더 큰 불확실성”이라며 “예정돼 있던 미‧러시아 정상회담이 무산되면서 러·우 전쟁은 당분간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제재 효과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토머스 그레이엄 미국 외교협회(CFR)연구원은 23일 블룸버그통신에 “이번 제재가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의 효과로 즉각 이어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백악관이 이번 조치가 푸틴의 정책이나 크렘린의 행동을 급격하게 바꿀 것이라 믿는다면 착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이엄은 이어 “제재는 본질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수단이며, 러시아는 과거에도 이 같은 제재를 우회하는 방식에 능숙함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