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전경. EPA연합뉴스
유엔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에 대해 지난 2년간 가자지구 구호물자 반입을 제한한 것은 국제법상 인도주의 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하며 유엔의 구호 활동에 협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ICJ는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적 의견’을 내렸다.
ICJ의 권고적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법 해석이나 국제 분쟁 해결에 있어서 권위 있는 해석으로 인정받는다.
ICJ는 “이스라엘 정부는 UNRWA를 포함한 유엔 산하 기관이 제공하는 구호 계획에 동의하고 이를 촉진할 의무가 있다”며 “단순히 점령지 내 구호품 반입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이 물품이 공정하고 차별 없이 꾸준히 배분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도적 지원을 받으려는 민간인에 대한 위협이나 폭력 또는 치명적 무력행사를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지난 1월부터 UNRWA 직원 1000여명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연결되어 있다며 이 기구의 활동을 금지해 왔다. ICJ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관해 “이스라엘이 (UNRWA와 하마스가 연결됐다는)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ICJ는 “가자지구 내 인도적 상황은 여전히 참혹하며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쟁 이후 기아로 400여명이 사망하는 등 가자지구의 기아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연설에서 “가자지구의 가족들은 기근과 부상, 붕괴한 의료 시스템 등으로 인한 질병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ICJ의 권고적 의견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ICJ의 판결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ICJ가 노골적으로 정치화된 의견을 내놨다”며 “이는 이스라엘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하마스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월 ICJ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이 불법이라고 판단하며 해당 지역의 정착촌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이 결정을 비난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ICJ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제노사이드) 혐의에 관한 판결도 앞두고 있다. ICJ의 이번 권고적 의견은 남은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엘리아브 리블리히 텔아비브대 법학부 교수는 “이스라엘 외교부가 ICJ의 판결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비난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스라엘에 편견이 없는 판사들조차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노르웨이는 ICJ의 의견을 바탕으로 유엔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구호 활동 방해와 관련한 결의 채택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