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비롯한 모든 활동이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작가는 다양한 비인간적 존재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에이전시의 역할을 해야한다.”
제14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며 내한한 인도의 세계적인 작가 아미타브 고시(69)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설가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이 같은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봤다.
‘탈식민주의’, ‘생태주의’는 작가의 문학을 정의하는 키워드다. 그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작품에 녹여내는 것에 대해 “1980년대 말 제 첫 책이 출판됐을때 영미권에서는 ‘남반구 작가들이 (사는 것이) 힘들어서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미국에서 정치에 관련된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문학에 정치사회적인 부분을 녹여내는) 이것이 (문학적) 진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경리 작가에 대해서는 “작가가 분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는 나의 경험과도 연결된다. 나의 가족은 방글라데시 출신이지만, 나는 인도에서 자랐다”며 “박경리의 작품에 빈곤한 시대가 그려지는데 나 역시 가난한 국가 출신이라 나의 문학과 삶에 (박경리 작품이) 연결고리가 있다”고 말했다.
1956년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1986년 고향 벵갈을 떠나 북아프리카로 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첫 소설 <이성의 순환>으로 1990년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독립과 독재 등으로 점철된 인도와 미얀마 격동의 근대사를 다룬 <유리궁전>,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 원인을 고발하는 논픽션 <대혼란의 시대>, <육두구의 저주>등이 널리 알려졌다.
제14회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아미타브 고시는 방대하고 복잡한 역사의 물줄기를 묘사하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전쟁의 참상과 파괴에 대응하는 개인들의 몸부림을 절박하게 그려냄으로써 탈식민주의와 정체성 탐구라는 주제를 작품 속에 성공적으로 담아냈다”고 평했다. 2011년 토지문화재단이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박경리문학상은 최인훈을 비롯해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응구기 와 시옹오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수상했다.
작가는 이날 간담회를 시작으로 방한 일정을 이어간다. 23일 강원도 원주에서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한 뒤 27일에는 서울대학교에서 강연을 28일에는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대산홀에서 박혜진 평론가와 대담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