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조지아주 한국인 감금 사태 이후 커진 한국 내 반미 감정과 관련해 한·미 정상이 ‘화해’를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미 전문가의 전망이 나왔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 겸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헨리 키신저 석좌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에 게재한 기고 ‘아시아의 트럼프 문제’에서 지난 9월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 단속 이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관계는 회복(repair)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린 소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2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노련한(masterful)”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면서 둘 사이에 “이념적으로 기묘한 관계”가 가능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재명은 진보 좌파 출신으로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베테랑이자 반미(심지어 친북) 성향을 띤 인사들을 참모로 기용했지만, 외교정책에선 실용주의자이자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린 소장은 하지만 “300여명 한국인이 수감자로 끌려간” 조지아주 구금 사태가 한국 대중에 분노를 자아냈다면서 “한국인의 한·미동맹 지지는 90%에 달하지만 이제는 이재명의 진보 진영 내 반미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측이 활용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참석은 화해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 겸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헨리 키신저 석좌. 시드니대 홈페이지
그린 소장은 한국 외에도 일본, 인도, 호주 등 아시아 국가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전했다.
그는 “아시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면서 “그 결과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아직도 혼란 상태이고, 아시아 정상들은 중국에 맞선 안보 강화를 비롯해 미국과의 파트너십에서 오는 이점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트럼프 관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같은 아시아 정상이 없다는 게 그린 소장의 주장이다. 그는 아베 전 총리가 “정상회담 20회, 전화통화 32회, 골프 라운딩 5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프레임워크를 채택하도록 설득했고, 북한을 상대로 한 ‘화염과 분노’ 위협 때도 조용하게 실제 대북 무력 사용 조건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정치적 좌파로 트럼프와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였던” 문재인 대통령조차 “북한과의 외교를 장려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 편에 섰다”고도 말했다.
그린 소장은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한 다카이치 사나에 집권 자민당 총재에 대해선 “‘재팬 퍼스트’(일본 우선주의)를 신봉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공감할 수 있는 대중 강경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자민당 내부 정비가 우선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APEC 계기 개최 가능성이 나오는 미·중 정상회담과 관련 “트럼프가 미·중 관계를 우선시해 다카이치를 밀어낼 경우 다카이치는 국내적으로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