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이 지난달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 개인(인플루언서)이 운영하는 유튜브 뉴스 현상에 관해 집중 보도했다. 해석과 프레임 설정을 중심으로 한 유튜브 뉴스 채널이 권력화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논점이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큰 영향력이 있다면 유튜브 채널도 마땅히 상호 감시와 비판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문제 제기였다.
유튜브 뉴스는 객관성보다는 의견과 편향에 무게를 두는 한국 기성 언론의 특성을 매체에 맞게 계승, 강화했다. 사실, 객관주의 뉴스는 생래적이기보다는 역사적 산물일 뿐이다. 18세기 후반 서양에서는 시민혁명과 함께 정당정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신문은 정파지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의 유튜브처럼 사실보다는 일방적 의견과 주장에 무게를 두는 주창 저널리즘을 펼쳤다. 이후 신문은 확대하는 도시 중산층을 목표 이용자로 삼기 시작한다. 이때 더 많은 이를 아우르기 위해 등장한 게 객관 저널리즘이었다. AP 등 뉴스통신사 또한 더 많은 신문에 기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파에도 무난한 내용이 필요했다. 결국, 이 객관적 스타일이 저널리즘 준칙으로 자리 잡았다. 커지는 영향력에 대한 사회적 우려에 신문 스스로 객관주의로 응답한 것이기도 했다. 사설이나 칼럼 등 의견란에서는 주관적 표현이 가능했지만, 이와 명백히 구별되는 기사 영역에서는 사실을 중심으로 한 객관 보도가 불문율이 되었다.
한국은 이와 다른 길을 걸었다. 기사와 의견의 구별 전통이 없으면서도 서양의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표방하려는 모호한 모습을 띠어왔다. 기사 제목 및 내용에서 주관적 표현을 남발한다. 기자가 주장을 펼치는 칼럼을 쓰고, 논설위원의 이름으로 직접 취재한 기사를 쓴다. 한국 언론의 객관성이란 따옴표로 말 옮기기만 하거나, 명백한 진실조차 ‘중립적으로’ 공격과 방어를 배치하면 되는 쉬운 방편일 뿐이다. 작은 투입으로 어느 정도의 클릭수만을 얻으면 존속 가능한 유튜브 저널리즘은 돈 드는 취재망 없이 기성 언론의 해석과 주창 방식만을 승계했다. 큰 투입으로 매우 큰 규모의 수용자를 얻어야 하는 기성 언론과 다를 수 있다. 기성 언론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었다.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 그리고 정파적 극화 현상 완화를 위해서도 기성 언론은 정통 저널리즘 실천을 도리어 굳건히 해야 한다. 예전처럼 모두를 아우를 수는 없지만 여전히 대다수인 중간층 이용자가 남아 있다. 유튜브 뉴스 채널 중에서도 주요 언론사가 운영하는 것 대부분이 개인이 운영하는 것들보다 구독자수 및 조회수가 월등히 많다. 최지향 이화여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개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뉴스를 많이 보아도 정치 지식은 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 참여는 높아진다. 현재 주요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가 적극적 소수에 휘둘리고 있는 것과 관련해 생각해볼 부분이다.
공진화(共進化)라는 개념이 있다. 생태계에서 서로 다른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한다는 말이다. 미디어도 공진화한다. 뉴미디어가 나타났다고 해서 기존 미디어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1920년대 방송이라는 당시의 뉴미디어 등장에도 신문이라는 올드 미디어는 변화하며 공진화해왔다.
유튜브 시대에도 방송과 신문은 기존의 지배력은 불가능할지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공진화할 것이다. 기성 언론은 유튜브에서 보는 비권위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이용자 친화적인 태도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사실보다는 해석과 프레임 설정에 중심을 두는, 적게 쓰고 웬만큼 버는 유튜브 비즈니스 모델을 좇는 것으로 버틸 수는 없다. 이것과 차별되는, 그간 한 번도 제대로 채워주지 못했던 정통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수요가 살아 있고, 더 커질 것이다. 유튜브도 자체 규율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타율 규제를 받게 될 것이다. 영향력이 커진 모든 미디어가 그런 길을 걸어왔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