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들이 상대를 속일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무기는 ‘칭찬’이다. “이런 좋은 집은 드물어요, 안목이 있으시네요.” “선생님이시니까 원가에 드릴게요.” 결함이 있는 상품일수록 말은 달콤해진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화려한 말로 허점을 감춘다.
요즘 우리 사회가 청년을 다루는 방식이 이와 비슷해 보일 때가 있다. 지난달 전국 곳곳에서 열린 ‘청년의날’ 행사를 돌아보면 더욱더 그렇다. 지자체와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청년에게 공감하고 위로한다” “청년들의 정책 토론 배틀을 유심히 경청했다” “의사결정 자리에 청년을 앉혔다”고 자랑했다. 위로, 응원, 경청, 존중. 어느 하나 문제 될 단어는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치던 10여년 전보다 훨씬 세련돼 보인다. 하지만 그 말들이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말’ 리스트를 정해놓기라도 한 듯 모두가 똑같은 문장을 읊는다.
문제는 추앙이 지나치면 본질이 가려진다는 점이다. 애당초 위로받을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이 사회는 청년을 늘 위로의 대상으로 만든다. 의사결정 권한이 제대로 배분되어 있다면, 찾아다니며 경청을 연출하거나 청년을 들러리처럼 세울 이유도 없다. 불평등과 차별은 그대로 둔 채 위로만 반복하면, 청년은 어느새 사회적으로 응원만 받으면 되는 존재로 고정된다. 그러다가 마찰이 생기면, 되레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뭘 더 바라느냐”고 되묻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청년을 위로의 대상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기존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젊은 시절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던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청춘이 이미 멀어진 지금, 청년에게서 그 시절을 대리 충족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청년을 의사결정 주체로 세우지는 않는다. ‘청년을 위한’ 정책은 많지만, ‘청년이 만드는’ 정책이 드문 이유다. 청년이 정책의 수혜자로만 남아 있으면 의사결정권은 여전히 기성세대의 몫이고, 상징적 참여만 허용하면 변화의 책임은 회피하면서도 청년 친화적이라는 이미지는 얻을 수 있다.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가보자. 전국의 청년 참여기구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청년의 제안이 실제로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또 어떤 계층의 청년들이 참여했는지 살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형화된 청년 정책의 모순이 드러날 것이다. 참여기구는 정치인들이 사진을 찍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온 청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다.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훈계하듯 흘려듣거나 멀찍이서 호명하지 말자. 같은 선상에서 토론하고,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자리를 나누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진짜 소통은 사진 한 장보다 오래 남고, 실질적 변화는 위로 백 마디보다 강력하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