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만삭 월급은 초생달인데
안 먹어도 불룩한 배는 늘 고픈 여자
집들이 때 쌓인 슈퍼타이 슈퍼에 들고 가
우유와 콩나물로 바꿔 먹는 여자
위층 상가 갈빗집에서 솔솔 풍겨 나오는
숯불갈비 냄새 킁킁거리다 깜박 잠에 빠진 여자
블라우스 원단에 수놓은 꽃밭
손으로 밀고 발로 밟으며 가는 여자
밟아도 밟아도 늘 제자리
배로 미싱을 밀고 가는 여자
-시 ‘배부른 여자’, 김해자 시집 <무화과는 없다>
고구마를 캐는데 농부가 아니라 숫제 광부가 된 기분이다. 올핸 뿌리줄기가 아주 깊은 데까지 들어가 주상절리처럼 서 있어서 살살 만지면서 다치지 않게 캐야 했으니. 본줄기에서 멀리 도망가서 자란 애들도 많아서 가장자리까지 흙을 파헤치며 달래듯 캐야 했으니. 크기도 들쑥날쑥이다. 큰 애는 애호박만 하고 작은 애는 애기당근만 하다. 양극화가 꽤 심하다. 고구마를 배게 심어서 그런가,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 와서 그런가. 물길 찾아 깊이, 또 멀리 뿌리를 뻗어가느라 어린 고구마도 참 힘들었겠다.
초생달이 시나브로 불룩해지더니 만삭을 향해 간다. 볼록한 황금빛 달을 보니 자정에 잠시 모터를 끄고, 우유 한 모금에 보름달 빵 한 조각을 조심스레 입에 넣던 봉제공장 시절이 생각난다. 30년 과거인데 허기가 지금처럼 느껴진다. “배는 만삭 월급은 초생달인데/ 안 먹어도 불룩한 배는 늘 고픈 여자”들이 지금도 있을까. 아마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과거는 누군가의 현재이기도 하니까. 지금도 배가 미싱판에 꽉 닿아 뱃속 아기와 함께 “배로 미싱을 밀고 가는” 임신부가 있을까. 있을 법도 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5100만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으니.
추석 대목이라고, 납기일에 재촉당하며 며칠째 야근을 하는 중 “위층 상가 갈빗집에서 솔솔 풍겨 나오는/ 숯불갈비 냄새 킁킁거리다 깜박 잠에 빠진 여자”들이 있을까. “블라우스 원단에 수놓은 꽃밭/ 손으로 밀고 발로 밟으며 가는 여자”들. 세계 인구가 82억이 넘어간다니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겠다. 지금도 나오다 안 나오다 끝내 끊긴 월급 때문에 버스비도 없어서, 줄 맞춰 노동청까지 걸어가는 노동자들이 있을까. 해결 방법이 달라지긴 했어도 반드시 있을 게다. 2024년 기준 전국 임금 체불 총액이 약 1조3000억원에 달하며, 피해 노동자가 17만명이 넘는다니. 통계란 대충의 숫자일 뿐,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을 테니.
나는 가끔 이 세상에 한 대여섯 명쯤의 내가 살고 있다고 상상하곤 한다. 내가 살아왔듯이 누군가는 나처럼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누군가의 현재가 누군가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고.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갈빗집 문을 열고 들어가, “저는 고기를 못 먹어서요… 1인분만 주실 수 있을까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문하는 가난한 신혼부부가 있을까. 알고도 모르는 척해주는 사장님 덕분에 한 점 두 점 몰래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사람들. 없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지금도 월세 재촉하는 집주인 때문에 자기 집에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들어가 불을 꺼놓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 월세방 쫓겨나면 고시원에 들고 고시원 쫓겨나면 쪽방에 몸을 누이는 사람들이. 찜질방 갈 돈도 끊기면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 먹고, 첫 전철이 다닐 때까지 졸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올 추석엔 내가 추우면 누군가가 그만큼 따듯해질 거라 믿었던 젊은 우리가 부활하기를 기원한다. 진상규명도 보상도 배상도 책임자 처벌도 없이, 275일째 무안공항 구호텐트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재삼 기억하면서. 내가 될 수도 있었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스러진 179명의 희생자를 잠시나마 추모할 수 있기를. 올 추석엔 내가 배고프면 누군가 조금은 채워질 줄 알았던 젊은 희망을 살려내기를 소원한다.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온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바람대로 억울하고 원통한 159명의 생명이 숫자로 취급되지 않길 빌면서. 배부른 달을 보며 새삼 가난한 희망과 연대로 배불렀던 마술 같은 기억으로 행복했으면.
김해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