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했다. 1948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기후’가 정부 부처 이름에 들어갔다.
부처 출범 전부터 찬반양론이 많았다. 찬성하는 쪽에선 기후 대응, 에너지 전환, 환경 규제를 한 부처에서 조율하면 이해상충을 줄일 수 있다는 점과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늦지 않게 적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반대 진영에선 이해상충이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싸우느라 일이 제때 진행이 안 되고 결국 둘 다 제 역할을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영국·프랑스가 에너지와 기후 부서를 합쳤다가 곧 원상 복귀한 것을 실패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이 지났다.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에서 195개국이 채택한 파리협정은 기업 경영을 넘어 국가의 성장 전략에도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요구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가치로 인식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추어 우리나라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한 것은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있다. 성장과 환경 문제가 충돌하는 대신 조화를 이뤄 환경을 개선하는 것 역시 성장의 한 축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번에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기존의 이질적인 두 조직(산업부와 환경부)이 일부 합쳐진 형태다. 이러한 시도가 진정 의미 있는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공 위해선 전력시장 개방 필수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한 두 가지 필요조건은 전력시장 개방과 배출권거래제 정상화이고,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은 출범 후 첫 장관의 현실 파악 역량과 시장 활용 능력이다.
전력시장 개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여기서 개방이란 민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기 ‘요금’을 전기 ‘가격’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지기 전까지는 기존의 경제급전 중심의 전력공급 체계가 나름대로 효율성이 있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간헐성·변동성을 가지고 있어 전기 가격을 매개로 실시간 수급조절이 필요하다. 정부의 가격 규제로 한국전력의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쌓였고, 민간 투자의 경제성 확보가 불가능해지고,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가 송배전 제약으로 버려지고, 소비자 역시 아무 선택권 없이 주어진 가격체계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전력산업 개혁의 핵심인 탈탄소화, 지역분산화, 디지털화는 실시간 전기 가격을 매개로 진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고 관련 신산업 성장도 유발될 수 있다. 전력시장을 개방한 나라에서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활용되고 있다. 기존 사업 확장, 새로운 사업 모델 발굴, 기존 산업 사이의 융합 등을 통해서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에너지 부문에 접목해 전력 계통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에너지 플랫폼을 구현하고 운영하는 엔테크(En-Tech) 기업들도 급부상하고 있다.
새 조직의 성공을 위한 두 번째 필요조건은 배출권거래제 정상화다. 국내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 지 벌써 10년이 흘러 현재 제4기 배출권거래제(2026~2030년) 시행을 앞두고 있고, 배출권 할당의 전제가 되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확정이 임박해 있다.
배출권 가격은 탄소배출 기업뿐만 아니라 저탄소 기술 스타트업 등 탄소 감축으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는 신성장 산업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적은 배출권 유상 할당이 그 이유라는 주장도 있으나, 유상 할당을 확대하더라도 그 대상이 소수에 집중되면 과점 보유자의 집단 행위로 인한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유·무상 할당 대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업종이 아니라 ‘기업’으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탄소 누출을 우려해 업종별 동일한 잣대로 보호한다는 취지가 산업 전체의 위기를 촉진할 수도 있다. 최근 산업 전체가 위기에 처한 모 산업에 기업별 유상 할당이 도입되었더라면 지금쯤 일부 기업은 오히려 상대적 경쟁 우위에 있었을 것이다.
유명무실 배출권거래제 정상화도
마지막으로 장관의 높은 현장 이해도가 요구된다. 지난 9월26일 산업부문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토론회에서 김성환 장관은 “문재인 정권 때 수소환원제철 100만t 규모의 연구·개발(R&D) 사업을 하도록 계획을 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기한도 3년 늦춰지고 규모도 30만t으로 축소돼 아쉽다”고 했다.
철강 생산에서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환원제를 기존의 코크스에서 수소로 바꿔야 하는데, 이 전환이 상업성을 갖는 규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된다. 현재 사용하는 환원제인 코크스는 1700년쯤부터 퍼지기 시작했으니 인류가 철강 환원제를 목탄에서 코크스로 바뀌는 데 2000년이 걸린 셈이다. 용광로의 용량을 늘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인류가 처음으로 연산 100만t 규모의 용광로를 운용하기까지는 250년이 걸렸다. 1973년 가동한 우리나라 첫 용광로도 연산 103만t이었다. 마찬가지로 포스코가 1995년 도입한 코렉스(COREX) 기술은 20년을 시도했지만 60만t 규모에서 좌절됐고, 문제점을 극복한 파이넥스(FINEX)는 60만t에서 200만t으로 키우는 데 20년이 걸렸다. 파이넥스 역시 용량 확대는 2007년 준공된 3호기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환원제가 모두 석탄이었다. 이 환원제를 그린수소로 변경해서 최소 200만t 규모로 키우는 것이 가능할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는 전 세계 아무도 장담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용광로 안에서 철광석(Fe2O3)의 산소(O2)는 석탄(C)을 만나 이산화탄소(CO2)가 되어 발열을 하지만, 수소(H2)를 만나면 물(H2O)이 되어 흡열을 한다. 용광로 내부의 온도·기압·송풍 조합이 근본적으로 바뀌기에 이제껏 아무도 가보지 않은 영역이다.
이러한 난관들을 극복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초대 장관의 명확한 현실 인식과 복잡한 문제일수록 시장 원리를 활용하는 능력이 너무나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