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처음 등장한 ‘영포티(young forty·젊은 40대)’ 개념이 10년 만에 새삼 화제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딴판으로 바뀐 채 말이다. 처음 나왔을 때 영포티는 40대의 나이에도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 패션과 취향 등이 20~30대처럼 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1990년대 20대를 보낸 ‘X세대’가 사회적·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40대가 되면서 ‘젊게 사는 40대’가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떠오르면서다.
하지만 요즘 언급되는 영포티는 ‘어려 보이는 아이템을 어울리지 않게 장착한 40대’라는 다분히 조롱과 비하의 의미가 담긴 멸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젊은 척을 하거나, 과하게 젊은 감각을 강조하려 하거나, 외모만 신경 쓰는 중년 등의 표현으로 더 많이 쓰이는 식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1년 동안 언급된 ‘영포티’에 대한 글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 키워드와 연관된 비율이 55.9%로 절반을 넘었다. 영포티 감성과 관련된 검색어로는 ‘욕하다’ ‘늙다’ ‘역겹다’ 등이 꼽혔다.
영포티를 전형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몇몇 브랜드로 대표되는 패션이다. SNS 등 온라인에서는 영포티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밈으로 유통되고 있다. 로고가 크게 적힌 스트리트 브랜드 티셔츠와 운동화, 휴대폰으로는 아이폰을 쓰는 경우다.
20대가 썼을 땐 ‘힙하고 쿨했던’ 브랜드가 40대까지 유행이 되기 시작했을 땐 ‘올드한’ 이미지로 급락하기도 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호카’나 ‘온러닝’ 같은 러닝화 브랜드의 주가가 주춤한 이유로 40~50대가 이들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라는 분석을 내놨을 정도다.
워낙 이슈인 탓에 온라인에는 ‘영포티 자가진단’ 리스트라든가 영포티의 특징을 망라한 ‘영포티 특’ 같은 목록이 넘쳐난다. 한국 사회 ‘포티’의 일원으로서, 청년세대에 비친 40대의 이미지가 ‘젊어 보이려 애쓰는 중년’이었다니 좀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586세대와 MZ세대 사이에 중간관리자로 ‘끼인 세대’라고 생각해왔는데, 결국 어쭙잖게 젊은 브랜드나 기웃거리는 세대로 명명되었다니 말이다.
하긴, 나이는 중년이면서도 젊어 보이려 애쓴다는 영포티의 의미 자체가 어중간한 40대의 모습을 간파한 분석일 수도 있겠다. 나도 회사 동료 후배들과 얘기할 때 최신 트렌드에 밝은 척 오버한 것은 없는지, 내가 생각하는 세대 차이와 후배들이 생각하는 세대 차이에 실제로는 큰 간극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마흔을 넘었다고 해서 30대와 선을 긋듯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사회 진출과 결혼 등이 점점 더 늦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요즘 40대를 이전의 40대와 똑같은 중년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멸칭으로 등장한 영포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 갈등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40대가 새로운 타깃이 되었을 뿐이다. 스스로를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40대와 달리, 청년세대에게 영포티는 결국 기존의 ‘꼰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득권 기성세대에 해당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경제력과 기회를 지금의 청년세대보다 쉽게 가졌으면서, 젊어 보이려고까지 하는 그런 세대 말이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자리 잡은 기득권 세대가 청년세대를 이해하는 척, 외모나 패션까지 동질적으로 침범해오는 것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으로 읽히기도 한다.
세대 갈등은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주요한 위험 요소다. 저성장이 심화하는 국면에서 취업과 주거, 노후와 부양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가 누렸던 것들을 요즘 청년세대는 누리기 어렵게 됐다는 청년세대의 박탈감이 크고, 이것이 기성세대를 향한 공격과 조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영포티라는 단어는 현재 한국 사회가 나이와 세대를 규정하는 방식, 그리고 세대 간 불신과 혐오가 응축돼 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왜 한국 사회는 세대를 구획하고, 획일적으로 ‘저 나이대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배척하는 것일까.
세대 간 단절과 낙인찍기가 계속되는 한 세대 갈등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옷을 입으면 영포티처럼 보이는지, 저런 말을 하면 꼰대처럼 들릴지 고민하고 재느라 우리는 정작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을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윤주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