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지난 3월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탄핵심판 1회 변론에 출석해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24일 아침,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고검 청사엔 큰 혼란이 일었다. 이날 오전 10시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피의자 조사를 받기로 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앞서 박 전 장관은 1층 현관으로 출석하기로 특검과 협의한 터였다. 1층에서 포토라인을 만들고 박 전 장관 출석을 기다리던 취재진 수십 명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박 전 장관은 2015년 12월부터 1년 반가량 서울고검장을 지냈다. 취재진을 피해 청사로 들어가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도 결국 지하 주차장에서 기자를 마주쳤다. 표정엔 낭패감이 가득했다. 박 전 장관은 질문하는 기자에게 “쓸데없는 소리”라며 화를 냈다. 13시간가량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영상 카메라 앞에서야 “고생이 많으시다”며 취재진에게 짧게 소감을 밝혔다.
현장에선 박 전 장관이 ‘셀프 특혜 조사’를 시도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박 전 장관은 이날 지하에서 올라갈 때 현직 고검장이 주로 이용해 ‘황금마차’라는 별명이 붙은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잠긴 지하 2층 문을 억지로 열려고 시도했다는 말도 나왔다. 박 전 장관의 지하 출입 경위를 조사하던 청사 직원들은 “고검장 하실 땐 항상 누군가 문을 열어줬을 테니 그냥 열려있는 문인 줄 아셨던 모양이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특검이 출범하고 수백 명의 군인과 공무원이 서울고검 청사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수사팀과 협의한 대로 출석했다. 그 과정에서 기자들이 달라붙어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내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심우정 전 검찰총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모두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견뎠다. 재판과 수사에 비협조로 일관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조차 특검과 지하 출입 협의가 불발되자 결국 공개 출석했다.
박 전 장관이 검찰 전체를 지휘하던 법무부 장관이자 동시에 이들의 검찰 선배라는 권위 의식을 가진 채 조사에 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10년 전엔 서울고검장, 몇 달 전에는 법무부 장관이었지만 이젠 그저 내란 중요임무종사 피의자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