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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인간, 대지의 인간

입력 2025.09.04 22:00

수정 2025.09.0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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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의 작은 이야기]하늘의 인간, 대지의 인간
자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주 난민이었다
자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주 불법체류자였다
자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주 보트피플이었다

젊었을 때 그것은 젊은 날의
고독한 낭만적 비애인 줄 알았다
우리의 노동이 부족해서인 줄 알았다
애국심이 모자라서인 줄 알았다
불우한 민족의 슬픔인 줄 알았다

하지만 피땀을 쏟아내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정상 국민이 될 수 없었다
우리의 배경으로는 정규 시민이 될 수 없었다
우리의 신분은 종종 계약 해지된 상태였다

선거에서 정의가 승리하고 만세를 부르고
노동자는 철탑에 올랐다
선거에서 국민이 승리하고 카퍼레이드를 하고
노동자는 송전탑에 올랐다
선거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하고 정권 교체를 하고
노동자는 굴뚝에 올랐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우리를 받아들였다면 우리 모두 국토에 길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지의 인간이길 원한다

-시 ‘대지의 인간’-철탑 농성 노동자들에게, 백무산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


2주 전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나는 몹시 울컥했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시민들이 위로금과 후원금을 모아 노란 봉투에 담아 보냈기에 명명된 법이라서 그랬을까. 10여년 전에 만난, 쌍용자동차에 다니던 아빠를 둔 아이가 오늘 아침 일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며칠 동안, 7세 아이는 아버지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옷이 땀에 흠뻑 젖도록 아버지는 아들을 무동 태우고 절 계단을 올랐다. 파업 이후 아버지는 구속되었는데, 출소 이후 아이는 아버지와 딱 붙어 잔다 했다.

그날 오후 절 강당에서 77일간의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을 찍은 다큐를 보는데, 시종 그 아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헬리콥터에서 불이 떨어지고 땅에선 물대포가 뿜어지는 공장 마당은 전쟁터였다. 손이 묶인 채 엎드린 아빠들을 몽둥이로 내리치고 방패로 찍고 자근자근 밟으며 끌고 가는 전쟁영화 같았다.

정리해고와 파업과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 이후, 뇌출혈과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자신의 나라에서”, 그들은 불법적 “난민이었다”. 우울증을 앓다 행방불명된 후 투신하거나 야산에 목매달거나 연탄가스로 죽은 노동자도 있었다. 태어난 나라에서 그들은 떠돌아다니는 “보트피플이었다”. 사측이 청구한 손해배상으로 집에 가압류 딱지가 날아들고 수없이 협박 전화를 받던 조합 간부 아내가 죽었다. 자신이 일하는 나라에서 그들은 “불법체류자였다”.

그 모든 죽음과 고통에 억압과 탄압을 보장하고 방관하고 묵인하는 부당한 법이 있었다. 그간 “선거에서 정의가 승리하고 만세를” 불렀지만, “노동자는 철탑에 올랐다”. 부당함에 대항해 싸울 권리를 박탈한 법이, 박탈당한 자를 부당하고 불법적인 폭도와 조폭으로 만들었다. “선거에서 국민이 승리하고 카퍼레이드를” 했지만, 노동자는 송전탑과 굴뚝에 올랐다. 노조 탄압과 부당해고에 맞서 노숙하며 농성하고 단식하고 파업해도 눈 하나 꼼짝하지 않는 세상에서 마침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제발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라고.

일주일 전, 철탑에 오른 지 600일 만에 한 노동자가 땅을 밟았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지 4일째였다.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오랫동안 실종됐던 나라와 정치가 돌아올 수 있기를 꿈꾸듯이, 몽환적으로 비가 내린다. 엊그제 심은 배추와 대파 모종이 허리를 편다. 단비에 무와 갓 씨앗들도 껍질을 벗고 뿌리를 내리겠다. 친구들과 함께 농사를 짓겠다던 그 아이의 아버지도 밭에서 이 비를 맞고 있을까.

김해자 시인

김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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