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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디자인, 꾸미기 아닌 문제 해결의 언어

입력 2025.09.03 20:57

수정 2025.09.0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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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의 한가운데, 시민들이 그늘막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린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없던 풍경이다. 서울 서초구가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도 재난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 그늘막 설치를 추진했고, 1년여 준비 끝에 2015년 6월 첫선을 보였다. 이제 전국 어디서나 익숙해진 이 시설물은 공공디자인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그늘막뿐만이 아니다. 버스 정류소와 벤치, 가로 화분대, 맨홀과 소화전, 안내표지판과 현수막 게시대, 고속도로 색깔 유도선까지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며 ‘세상 참 좋아졌다’고 느끼는 요소요소에 공공디자인이 적용돼 있다.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 속칭 공공디자인법이 2016년 8월부터 시행 중이다. 공공(public)과 디자인(design)의 합성어인 ‘공공디자인’은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지만 실무자들조차 ‘디자인’이라는 말에 갇혀 공공시설물을 보기 좋게 꾸미는 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디자인은 시민이 더 안전하게 길을 오가고, 편히 쉬기도 하고, 이런저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공공 공간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일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 의뢰로 공공디자인 실무자들의 이해를 돕는 선도 사례를 취재하고, 그 내용을 사례집 <공공디자인 합니다>에 정리했다. 이 사례집은 결과물보다 시행착오를 포함한 과정을 기록해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공공디자인은 시설물을 예쁘게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적극적인 시도로써 사회 곳곳의 ‘관계성’을 촘촘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이다. 둘째, 정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과감한 모험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초구의 그늘막도 그랬다. 시범 설치 후 시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지만 도로교통법상 교통섬이나 모퉁이에 설치된 시설물이 시야를 가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기존 법령과 새로운 재난 대응 사이에 충돌이 생긴 것. 이에 서초구는 기능적으로 가로수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적극 설명하며 꾸준히 디자인과 안전성을 개선해 나갔다. 결국 행정안전부는 2019년 서초구의 그늘막을 기준으로 ‘폭염 대비 그늘막 설치 지침’을 마련했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됐다. 법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제도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다.

서울 동작구의 범죄 예방 디자인, 일명 ‘셉테드(CPTED)’ 역시 공공디자인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다. 사각지대를 주민 휴게공간으로 조성해 자연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등 지역 곳곳의 범죄에 취약한 틈새공간을 정비한 사업으로, 처음에는 구의회에서도 범죄 예방을 경찰 업무로만 보는 인식이 있을 만큼 낯선 사업이었다.

동작구는 전담팀을 신설하고, 조례를 제정해 행정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성격에 맞는 공모 사업을 부지런히 찾아 예산을 조금씩 확보해나갔다. 또한 범죄 예방은 일시적인 사업으로는 지속될 수 없기에 초기부터 주민 참여형으로 설계했다. 당연해 보이지만, 공무원에게는 큰 부담거리다. 또 다른 민원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심하게 설계된 동작구의 범죄 예방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화려하고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관계자는 목적에 맞게 덜어내고 정제하는 것 또한 디자인이라며 공공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꼬집었다.

공직사회 특유의 순환보직과 그에 따른 소극 행정 탓에 선도 사례를 답습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는 공공디자인 사업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 외에도 지역민의 삶이 더 나아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세심히 관찰하며, 때로는 과감히 모험을 감행하는 이들을 만나 반가웠다. 앞으로도 애꿎은 보도블록을 뒤엎거나 정체불명의 조형물이 지역을 어지럽히는 대신 지역민의 삶을 개선하고 관계를 촘촘히 잇는 용기 있는 시도가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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