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은 진중한 학자이자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평생 2000편이 넘는 시를 썼을 정도로, 그에게 시 짓기는 생활의 중요한 일부였다. 퇴계 스스로 자신의 시가 건조하고 싱거워서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래 두고 읽어보면 맛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은근히 자부하기도 했다. 훗날 그의 시는 학문적 깨달음이 시적 수준으로 이어진 사례로 평가됐다.
퇴계의 시를 현대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연구자라 할 만한 이동환 선생은 그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면모로 ‘맑고 깨끗한 세계를 향한 소망’을 들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 가운데 하나가 달이다. “시냇가 서당에 달 밝으니 강가 서당도 밝고, 오늘 밤 바람이 참 맑으니 어젯밤도 맑았다네. 비 갠 뒤의 저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우리는 어찌해야 그 밝고 진실됨을 체득할까.” 시원한 바람과 함께 환히 모습을 드러낸 맑고 깨끗한 달, 그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청정한 이미지가 그대로 내재화된 인격이야말로 그의 학문과 삶이 지향한 경지였다.
며칠 전 구속 기소된 김건희씨가 ‘달빛’을 언급한 입장문을 내놓으면서, 지난 2월 탄핵심판 때 ‘달그림자’를 언급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변론이 소환되고 있다. 이를 두고 ‘부창부수’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호수 위에 있는 달그림자”가 비상계엄의 실체가 없었음을 주장하려는 비유에 불과한 데 비해 “가장 어두운 밤에 달빛이 밝게 빛나듯이”라는 말은 거짓된 어두움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자신의 진실됨을 강조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결이 꽤 다르다.
달빛이 밝은 밤은 어두운 밤이 아니다. 옛사람들이 밤길을 갈 때 달의 차고 이지러짐에 민감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달마저 이지러져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정작 그때 더욱 빛나는 것은 별이다. 하나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 계엄의 날 소극적으로 행동한 군인들과 적극적으로 막아선 시민들이야말로 가장 어두운 밤을 밝힌 빛들이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나선 그 별빛들 앞에서 온갖 욕망과 비리로 점철된 당사자가 달빛을 입에 올리는 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이다. 가을밤 시원하게 펼쳐질 광풍제월로 빨리 눈을 씻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