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출발하기 전과 돌아다니는 틈틈이 지인들로부터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걱정 어린 당부 덕분에 별 탈 없이 다녀왔다.
‘여름철 더위 때문에 몸에 이상 증세가 생겼다’는 걸 흔히 ‘더위를 먹었다’고 표현한다. 실제로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먹다’란 단어를 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밥에 진심인 민족이라고 한다. 사람을 만나면 “밥 먹었냐”고 묻고, 오랜만에 마주친 이에게는 “밥 한번 먹자”고 한다. 평소 다른 사람의 식사를 얼마나 신경 쓰고 있었는가 곰곰 생각해보면 밥, 즉 먹는 데 진심이란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먹다’란 말은 오만가지에 붙는다. 입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음식물만 먹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고, 마음을 먹고, 겁을 먹고, 좌절을 먹고, 뇌물을 먹고, 1등을 먹고, 스포츠 경기에선 골을 먹는다. 그리고 종종 중요한 내용이나 약속을 ‘까먹어’ 욕을 먹기도 한다. 심지어는 친구도 ‘먹는다’. 속된 말로 친구가 된다는 뜻인데 우리말을 막 접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먹다’처럼 의미가 넓어진 단어가 많다. 입말에서도 재밌게 쓰이는 단어들이 있는데 바로 떠오르는 건 ‘달리다’와 ‘뛰다’다. 콘서트 등을 관람하거나 게임 등에 몰두할 때 ‘달렸다’거나 ‘뛰었다’라고 한다. 혹자는 경박한 표현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걸었다’고는 하지 않으니 그만큼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는 게 느껴진다.
또 생각나는 말은 ‘때리다’이다. 낮잠을 때리고, 영화를 한 편 때리며, 황당한 상황은 골을 때리기도 한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는 반면에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마감을 때리기 위해 분투 중이다.
항상 맛있고 좋은 것만 먹고 싶지만 살다 보면 욕이나 좌절을 먹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몸과 마음에 탈이 나지 않도록 잘 소화시키는 데 좀 더 집중해야겠다. 그러려면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