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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가

입력 2025.07.16 21:06

[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시선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가

나는 혐오한다. 나에게도 미움의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은 은하수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천문학자가 은하수를 미워한다니?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은하수는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은하의 단면이다. 우리는 지름 10만광년의 거대한 별 원반 변두리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 갇힌 채 우주를 본다. 고작 수천, 수만 광년 거리에 놓인 가까운 별과 가스 구름, 외계 행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 은하수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일 것이다. 자신이 알고 싶은 모든 우주의 비밀이 은하수를 따라 흘러가고 있을 테니까. 그런 천문학자들은 은하수를 사랑스러운 ‘밀키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은하수를 향하지 않는다. 나는 정작 나의 고향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남의 세상을 더 탐한다. 나의 관심은 우리은하 너머 수천만, 수억 광년 거리에 놓인 외부 은하를 향한다. 나처럼 외부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 은하수는 그야말로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거대한 똥’이나 다름없다. 높은 밀도로 별과 가스 구름이 빽빽하게 채워진 은하수는 그 너머의 우주를 가리는 장벽이다. 은하수가 얼마나 짜증나고 거슬리는 존재인지는, 지금까지 인류가 완성한 우주의 지도를 보면 공감할 수 있다. 사방으로 둥글게 가득 찬 우주의 지도에는 인류가 아직 채우지 못한 거대한 공백이 남아 있다. 은하수에 가려져 그리지 못한 우주의 공백은 그 면적만 전체 밤하늘의 무려 10%를 넘는다.

우주 전역에 분포하는 은하들의 입체 지도를 그리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2000년에 시작된 슬로안 전천 탐사(SDSS·Sloan Digital Sky Survey)가 있다.

우주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미국 뉴멕시코 아파치 포인트 천문대에 있는 지름 2.5m의 망원경을 활용한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망원경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오히려 망원경이 너무 크면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시야 면적이 매우 좁아지기 때문이다. SDSS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최대한 빠르게 둥근 하늘 전체를 훑어보는 것이다. 한 번에 너무 좁은 시야의 하늘만 담게 되면 하늘 전체를 훑어보기까지 대단히 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2.5m 크기의 작은 망원경으로 빠르게 하늘을 훑어보면서 방대한 우주 지도를 완성해왔다.

이런 관측으로 완성된 우주 지도를 보면, 우리은하를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부채꼴 모양 날개를 펼친 듯한 모습으로 은하가 분포한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실제 우리 우주가 이런 요상한 나비 날개 모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당연히 그렇지 않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모든 방향에 대해 빠짐없이 지도를 다 채울 수 있었다면 완벽하게 둥근 공 모양의 우주 안에 은하가 빼곡히 채워진 지도를 완성했을 것이다. 사이에 은하가 단 하나도 채워지지 않은 공백은 은하수에 시야가 가려져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어 제임스 웹까지 올라가고, 또 지상에 수십m 지름의 대형 망원경이 지어지고 있는 21세기가 되었건만 아직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주가 있다니! 게다가 그 이유가 고작 저 은하수 때문이라니! 외부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자의 마음을 헤아려보라. 은하수가 밉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처럼 외부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은하수를 밀키웨이 같은 다정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대신 ‘존 오브 어보이던스’(Zone of avoidance)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어차피 은하수가 가리고 있어 그 너머의 우주를 볼 수 없으니, 망원경의 고개를 돌려야 하는 회피 지역이라는 뜻이다.

매일 밤 은하수는 똑같은 모습으로 머리 위를 흘러간다. 하지만 그 똑같은 풍경을 보면서 누군가는 밀키웨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또 누군가는 회피 지역이라는 증오가 가득 담긴 멸칭으로 부른다.

은하수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는 천문학자들의 차이는 그들의 시선의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서 비롯된다. 시선의 끝이 정확히 은하수에 놓인 이들은 은하수가 사랑스럽다. 하지만 시선의 끝이 은하수가 아닌 생뚱맞은 더 먼 우주를 향하는 이들에게는 은하수는 그저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건 우리 시선의 끝이 그들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 은하에 대한 미련을 잠시 버리고, 은하수에 관심을 가져본다. 지난 수년 동안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밤하늘의 장막이 갑자기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난 처음으로 밀키웨이를 만났다.

지웅배 천문학자

지웅배 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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