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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겨울, 잎을 떨구다

입력 2025.02.12 21:16

수정 2025.02.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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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겨울, 잎을 떨구다

“위험해 그 위로 가지 마!” 뭍으로 올라간 자식을 따라 물가까지 쫓아온 어미 물고기가 소리치는 모습을 그린 한 컷짜리 만화는 현재 육지에 사는 모든 네발 동물의 조상이 물고기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왜 물고기가 멀쩡한 물을 떠나 육지를 향했는지 그 이유를 여태 모른다는 인간의 무지를 비웃는다. 좀 심술궂게 따지면 이 만화의 작가가 사춘기를 지나는 말썽꾸러기 자식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질문을 틀어보자. 어미 물고기가 있던 곳은 민물일까, 바닷물일까?

잘 모른다. 미국 뉴욕대 의과대학의 생리학자 호머 스미스는 초기 척추동물이 민물에서 비롯했다고 말했다. 민물에 사는 어류와 달리 먼바다의 경골어류가 콩팥에서 여과 장치를 없애버린 현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금기 적은 민물에 사는 물고기는 삼투압 차이 탓에 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막고 체액 안의 염분을 고스란히 지켜야만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염류를 지키는 일이 주된 업무인 콩팥이 민물에서 진화했다는 뜻이다. 반면 바닷물에서는 염분 걱정이 필요 없다. 바닷물고기는 넘쳐나는 염분을 아가미로 배출하는 대신 물은 체내에 남겨서 체액을 유지하고 소량의 오줌을 만드는 데 쓴다. 스미스는 물고기가 물을 간직하고 염분만 배출하기 때문에 바닷물이 더 짜졌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물고기는 콩팥을 장착하고 험난하기 그지없는 뭍에 올랐다.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팔굽혀펴기가 가능한 물고기 화석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고기가 육상을 넘보기 훨씬 전인 약 6억년 전에 이미 뭍 근처에 도달한 생명체가 있었다. 녹조류와 그의 친척인 나선정자녹조류(streptophyte)가 그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 녹조류가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육상 녹색식물의 조상이라고 간주한다. 유전체 분석에 바탕을 둔 이런 결과는 수긍할 만하지만, 이들에게도 뭍을 넘본 물고기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식물의 조상은 민물에서 진화했을까? 답은 ‘그렇다’에 무게가 실린다.

2017년 생화학자 존 아치볼드는 광합성을 담당하는 엽록체가 민물에 살던 남세균에서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생명체가 남세균을 꿀꺽 삼킨 사건은 약 15억년 전에 벌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부터 식물과 동물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뭍에 도착한 식물이 마주친 현실은 어땠을까? 무엇보다 태양으로부터 내리쬐는 강력한 자외선이 커다란 위험요소였을 것이다. 식물은 산소를 방출하지만 이들이 대기권 높은 곳에 자리하여 오존 방패막으로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자외선 말고 쉬이 증발하는 물을 지키는 것도 문제다.

물부족 스트레스에 대응하여 식물이 앱시스산(abscisic acid) 호르몬을 갖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25년 1월 중국과 이스라엘 공동연구팀은 이 호르몬의 수용체 단백질이 육상 식물에 두루 분포한다는 사실을 ‘최신 생물학’에 보고했다.

식물계의 양서류에 해당하는 이끼는 물과 영양소를 위아래로 운반하는 관다발이 없고 오직 줄기와 헛뿌리로만 살아간다. 게다가 생식을 하려면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가뭄이 들면 줄기를 구부려 몸속에서 수분이 98%까지 빠져나가더라도 다시 물이 공급되면 되살아난다. 이끼들이 앱시스산 호르몬의 신호 전달체계를 갖추고 물 있는 곳을 찾아 절벽과 보도블록 틈을 노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앱시스산 합성을 책임지는 효소군과 이 호르몬의 수용체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확인한 연구팀은 이 신호체계가 나선정자녹조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앱시스산 경로에도 공통조상이 있다는 뜻이다.

기공을 닫고 잎을 떨구는 신호 물질인 앱시스산은 탄소 15개짜리 대사산물이다. 식물세포는 레고블록 쌓듯 기본 단위를 엮어 화합물을 만든다. 우리는 식물이 탄소 5개짜리 물질 셋을 묶어 앱시스산을 만들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블록을 잇는 대신 식물은 카로틴 화합물을 반으로 자르고 다듬어 앱시스산을 만든다. 카로텐은 당근의 주성분이자 탄소가 40개인 화합물이다. 이 화합물을 반으로 자르면 단백질과 결합하여 어두운 곳에서 빛을 감지하는 비타민A로 바뀐다. 카로텐은 비타민A와 앱시스산의 출발물질이다.

동물은 콩팥으로, 식물은 앱시스산으로 물의 부족함을 이겨낸다. 눈이 와도 춥고 긴 겨울은 물이 부족한 가뭄의 계절이다. 식물은 잎을 떨구고, 말없이 봄을 기다린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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