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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 [아침을 열며]누가 오송참사를 지우려 하는가
    누가 오송참사를 지우려 하는가

    지난 16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양쪽 입구에 ‘오송참사 희생자 기억의 길’ 현판이 걸렸다. 2023년 7월15일 이 지하차도는 인근 미호강을 범람한 물에 잠겼고, 14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현판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참사를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가로 6m, 세로 30㎝. 구조물의 안전을 고려했겠지만, 멀리서는 잘 뵈지도 않는 이 작은 현판을 하나 거는 데 2년3개월(823일)이 걸렸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희생자를 위로하는 작은 ‘안식처’를 하나 마련하는 것조차 이렇게나 힘들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지역 분위기를 저해하고 땅도 잘 안 팔린다. 화장터나 장례식장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현판을 반대한 이유를 보면 ‘궤변’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궁평2지하차도 주변엔 민가가 없고, 논밭도 별로 없다. 서울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터에 들어선 모 아파트는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초고가이고, 거주민 중...

    2025.10.19 20:44

  • [아침을 열며]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눈앞의 순위, 당장의 속도에만 집착해 장거리 경주를 망치는 일을 흔히 ‘촌놈 마라톤’에 비유한다. 마라톤에서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가 얼마 못 가 뒤처지는 상황을 말한다. 한 시즌에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에서 초반에 전력을 쏟아부어 상위권에 올랐다가 중반 이후 하락하는 팀을 놀릴 때도 쓴다. 마라톤이든, 야구든 멀리 보고 차근차근 레이스를 펼쳐야 자신의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일에서 ‘조급함’은 성공적인 완수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요즘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사법개혁 논의를 보면 조급함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를 이끄는 인사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검찰에서 비롯됐다고 여길 것이다. 또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켰고, 끝내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유린 사태까지 맞았으니 그 분노와 절박함을 모르지 않는다. 사법개혁 역시, 시작은 이재명 대통령의 ...

    2025.10.12 21:57

  • [아침을 열며]영포티, 꼰대, 그리고 나
    영포티, 꼰대, 그리고 나

    2015년에 처음 등장한 ‘영포티(young forty·젊은 40대)’ 개념이 10년 만에 새삼 화제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딴판으로 바뀐 채 말이다. 처음 나왔을 때 영포티는 40대의 나이에도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 패션과 취향 등이 20~30대처럼 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1990년대 20대를 보낸 ‘X세대’가 사회적·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40대가 되면서 ‘젊게 사는 40대’가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떠오르면서다.하지만 요즘 언급되는 영포티는 ‘어려 보이는 아이템을 어울리지 않게 장착한 40대’라는 다분히 조롱과 비하의 의미가 담긴 멸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젊은 척을 하거나, 과하게 젊은 감각을 강조하려 하거나, 외모만 신경 쓰는 중년 등의 표현으로 더 많이 쓰이는 식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1년 동안 언급된 ‘영포티’에 대한 글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 키워드와 연관된 비율이 55.9%로 절반을 넘었다. 영포티 ...

    2025.09.28 21:41

  • [아침을 열며]짖기만 하고 물지 않는 트럼프
    짖기만 하고 물지 않는 트럼프

    지난달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럽 정상들 간의 회담에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유럽 정상들은 젤렌스키를 엄호하고자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기꺼이 워싱턴에 동행했다. 미국의 태도도 우호적이었다. 트럼프는 휴전을 위해 젤렌스키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하지만 백악관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가 무색하게도 그날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 러·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은 미·러 간에 사전 합의된 게 아니라 트럼프의 일방적인 요청에 불과했고 푸틴은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었다.체면을 구긴 트럼프는 러시아를 제재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갑자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들이 먼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해야 미국도 대러 제재를 할 수 있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이쯤 되면 푸틴을 제재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트럼프는 할 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영미권 언론은 ‘짖는...

    2025.09.21 21:30

  • [아침을 열며]검사가 우대받는 나라
    검사가 우대받는 나라

    검찰개혁이 대세인가 보다. 검찰 내부의 반응이 과거와 다르다. 윤석열을 옹호했던 일부 검사들이 앙앙불락하지만 메아리는 없다. 조직적으로 반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검찰의 김건희 황제조사와 무혐의, 구속취소된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즉시항고 포기를 국민은 목도했다. 검찰의 조직적 옹위를 받던 ‘검사왕’ 윤석열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를 겪고도 검찰개혁에 실패한다면 영원히 검찰개혁은 못한다고 봐야 한다.그래서 검찰개혁의 전선은 여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방향과 내용에 대한 논쟁에서 검찰과 야당은 사실상 빠져 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대원칙하에 중대범죄수사청 위치를 둔 1라운드에 이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두고 2라운드가 펼쳐지는 모양새다.그런데 여권 내부의 검찰개혁 논쟁에서 하나의 큰 축이 빠진 느낌이다. 검사가 가진 국가 내의 지위 자체가 너무 높다는 지적은 왜 다뤄지지 않는지 의아하다. 이 부분도 검찰의 권한 분산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검사의 과도한...

    2025.09.14 21:28

  • [아침을 열며]윤석열의 ‘건폭몰이’, 진실규명해야
    윤석열의 ‘건폭몰이’, 진실규명해야

    지난 6일 경남 김해시에 있는 롯데건설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굴착기에 치여 사망했다. 다소 의외였던 것은 발빠른 사측의 대응이었다. 롯데건설은 사고 당일 대표이사 명의로 공개 사과문을 냈다. 고인과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로는 물론 현장안전진단 및 안전대책 수립 등 후속조치까지 포함됐다.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최근 3년(2022~2024)간 건설현장에서 총 1086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하루 한 명꼴이다. 산재 사망이 만연한 국내 건설업계에서 대기업이 이렇게 빨리 사과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사측의 빠른 대응은 물론 칭찬할 만한 일이다. 다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산업재해 엄벌”을 공언하지 않았다면,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는 포스코이앤씨의 사례가 아니었다면, 과연 롯데건설이 사고 당일 사과문을 냈을까. 직전 윤석열 정권에선 볼 수 없던 풍경이다.정부가 산재에 대해 어떤 ...

    2025.09.07 21:29

  • [아침을 열며]현장을 기록한 죄
    현장을 기록한 죄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에서 ‘정윤석’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2006)로 시작해 <진리에게>(2023)로 이어지는 연출작 13편,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2013) 비프메세나상,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넷팩상을 비롯한 8번의 영화제 수상경력, 그가 만든 영화를 평가한 전문가의 글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도 정윤석 감독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고, 남들이 인정할 만한 성과까지 낸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오랫동안, 아주 열악한 환경으로 알려진 다큐멘터리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지켜왔다는 사실도.정 감독이 지난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유죄 판결(벌금 200만원)을 받았다. 혐의는 단순건조물침입. 역설적이게도 이는 그가 역시나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이번 현장은 지난 1월19일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

    2025.08.31 21:38

  • [아침을 열며]고되고 위험한 일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고되고 위험한 일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죽음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재해 사망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비유하면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직을 걸겠다”고 했다.정부는 노동자 보호의 범위를 넓히고,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범위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으로 확대하고, 기업의 안건보건공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중대재해 위반이 발생하는 기업은 공공계약 입찰에서 감점을 받고,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다수의 반복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국정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산재 사고가 많다는 뜻인 동시에 정부가 칼을 뽑아 들기 전에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분야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산재 근절 의지를 밝힌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한국은 경제 ...

    2025.08.24 21:01

  • [아침을 열며]가자지구 제노사이드
    가자지구 제노사이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그만둘 것이라는 전망은 성급한 예단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태국·캄보디아에 분쟁을 멈추라고 경고했고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평화협정을 중재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휴전 협상도 손을 댔다 뗐다 변덕을 부리긴 했지만 개입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어 온갖 분쟁에 참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그러나 가자지구 문제에선 트럼프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목소리를 낸 순간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달 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가자의 굶주림이 심각하다. 지원을 더 많이 하겠다”고 했고 가자에 기아가 없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타머가 트럼프에게 뼈만 남은 가자 주민들의 사진을 보여준 게 주효했다. 그러나 얼마 후 트럼프가 앙상하게 마른 이스라엘 인질의 사진을 봤고 네타냐후의 가자 점령 계획을 내버려두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가...

    2025.08.17 20:05

  • [아침을 열며]트럼프는 진짜 ‘반중’인가
    트럼프는 진짜 ‘반중’인가

    ‘트럼프 해례본’이라는 게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느닷없는 정책을 꺼낼 때마다 이를 선해하는 국내의 트럼프 맹종자를 비꼬는 표현이다. 트럼프는 다 계획이 있고, 그 핵심이 중국 압박이라는 해석을 해준다는 것이다.미국이 6월22일 이란 핵시설을 공격했을 때도 이들은 이란에서 암암리에 원유를 사는 중국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각종 정책이 좌충우돌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중국 견제라는 고도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그 믿음은 바로 깨졌다. 이틀 후 트럼프는 “중국이 이제 이란에서 원유를 살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화들짝 놀란 백악관은 이란산 원유 수입이 여전히 국제 제재 위반이라며 진화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서만 예외를 허용하겠다는 건가?트럼프의 ‘중국 예외주의’는 또 있다. 트럼프 정부는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인다는 이유로 인도에 50%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전체 원유 수입 중 14%를 러시아에서 들여온...

    2025.08.1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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