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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귀퉁이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아빠 힘내세요
    아빠 힘내세요

    “딱 세 살만 덜 먹었으면 저 젊은것들을 확 제꼈을 턴디.” 언젠가 가을 운동회날 1등 상 몫의 노트 세 권을 아깝게 놓친 어머니가 무심코 했던 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황토 먼지 자욱한 운동장, 향나무 아래 앉아 먹었던 붉지도 달지도 않은 우린감과 어머니 탄식이 생각난다. 아마 어머니는 여름방학 내내 아침마다 싸리 빗자루로 학교 운동장 쓸고 받았던 어린 아들의 노트 한 권을 떠올렸음이 분명했다. 그 어머니는 내 세포 하나하나에 미토콘드리아를 가득 남겼다. 세포 발전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미토콘드리아는 수십년 지난 지금도 근육세포에서 맹활약하며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어머니와 아버지는 유전자를 절반씩 섞어 자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것 말고도 어머니는 따로 여분의 몫을 떼어준다. 짐작하다시피 그것은 미토콘드리아다. 세균만큼 작은 이 소기관에는 과거의 영화를 드문드문 간직한 유전자 몇벌이 있어서 후손의 안위를 알뜰히 보살핀다. 부모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이 추...

    2025.10.22 23:22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거위의 간
    거위의 간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김지하의 시 ‘무화과’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술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비틀거리던 친구가 이렇게 말하자 바로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사람을 위로하는 말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생물학적으로 위 구절은 틀렸다. 무화과(無花果)도 엄연히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탓에 저런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무화과의 꽃은 어디에 있을까?850종에 달하는 무화과나무의 꽃은 성숙하지 않은 과일 안에 숨어 있다. 이렇듯 쉽게 답하기는 하지만 실상 이 나무의 생활사는 무척 복잡하다.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수나무에서 꽃가루를 가져다 암나무 암술에 옮겨주는 뭔가가 필요하리라 짐작한다. 맞다. 주인공은 무화과 말벌이다. 벌의 목표는 알을 낳는 것이다. 알을 밴 암벌은 수무화과 열매의 배꼽 부분을 열고 들어가...

    2025.09.10 20:46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더위 먹다
    더위 먹다

    덥다. 올 7월 평균 기온은 28.6도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략 10도 안팎인 일교차를 감안하면 한낮에 30도가 넘었다는 뜻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몸속 분자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얼마나 빨라질까? 10도 증가할 때마다 화학 반응 속도는 약 2배 빨라진다. 이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놀랍게도 생물학자가 아니라 천문학자였다.미국 캘리포니아주 윌슨산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천체망원경을 갖춘 천문대가 있어서 당대의 천문학 연구를 이끌었다. 20세기 초반 할로 섀플리는 구름이 껴 하늘을 볼 수 없는 날이면 전망대 앞마당에 쪼그려 앉아 개미를 관찰했다. 그냥 구경만 한 게 아니라 기온과 개미가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해 그래프를 그렸다. 기온이 10도 올라가면 개미는 2배 빠르게 쏘다녔다. 개미의 움직임은 외골격에 달라붙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뜻하고, 에너지 통화 물질의 화학 반응이 이 과정을 주관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몸 안의 분자도 온도 증가에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2025.08.06 21:02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콩 심은 데 콩 난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처음 땅콩을 본 것은 전북 부안의 외가에서다. 산등성이를 개간해 만든 초가지붕 높이의 밭은 안방 뒷문을 어둡게 막아섰다. 밭을 매던 할머니의 몸은 땅콩밭과 그야말로 하나가 되어 무색옷이 아니었다면 구분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솔잎을 때려 파도 소리를 내고 노란 땅콩꽃은 할머니 어깨를 따라 시나브로 움직였다. 그렇게 할머니와 땅콩밭이 그려낸 정물화는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삼월 삼짇날이면 어머니는 검은콩을 볶았다. 주머니 안에서 엄지와 중지로 볶은 콩의 껍질을 벗겨 오도독 씹어 먹는 일은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볶은 콩은 긴 겨울을 넘기고 먹을 것 귀하던 시절의 군입거리였던 셈이다. 볶은 콩은 맛있었지만 절구질한 메주콩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 주변 항아리 뚜껑에 흰 눈이 쌓여 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메주 삶던 시기는 아마 김장하고 난 뒤쯤이었나보다.껍질에 구멍 송송 난 듯한 검은콩이나 메주를...

    2025.07.02 21:59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세균도 세상을 뜨는구나
    세균도 세상을 뜨는구나

    지름 3㎝에 길이 6m인 관의 부피는 4000㎖가 넘는다. 이는 소장의 부피를 어림잡아 계산한 양이다. 생리학자들은 소장 안으로 하루 약 10ℓ의 액체가 들어온다고 말한다. 마신 물과 음식에 든 것 약 2ℓ에 소화효소나 침, 담즙의 양 약 8ℓ를 더한 값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매일 소장을 들락거리는 셈이다. 밥을 먹고 소화하는 동안에는 물과 으깬 음식물이 섞여서 우당탕 위와 소장을 지나가겠지만 잠을 자느라 먹지 못한 채 맞은 새벽에 소장에 든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이런 질문을 하는 까닭은 지난주 세미나 시간에 공복 시 장액의 양이 500㎖라는 소리를 들어서다. 내 깜냥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논문을 찾아보았더니 공복 시 소장 내 물의 양은 고작 43㎖ 정도에 불과했다. 작은 요구르트병 절반 조금 더 되는 양의 물이 있는 것이다. 아마 가물어 물이 마른 실개천의 모습을 떠올리면 될 듯싶다. 음식과 물이 함께 들어와도 위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음식물을 소...

    2025.05.28 20:52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아침마다 나는 500억개의 유산균이 든 요거트를 먹는다. 달고 맛도 좋다. 창밖으로 봄이 성큼 지나간다. 매화꽃이 피었나 싶더니 어느새 손톱만 한 열매가 초록 잎 뒤로 숨는다. 아마 살구와 앵두 열매도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어린 과일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땅으로는 봄나물이 빈 곳을 채우며 무성하지만, 슬쩍 데친 두릅나무 순처럼 과일과 나물의 봄맛은 쌉싸름할 뿐이다.우리는 다섯 가지 정도로 세상의 맛을 느낀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최근에는 지방 맛을 감지하는 또 다른 미각 수용기가 알려지기도 했다. 미각을 담당하는 수용기는 대개 혀에 분포한다. 음식물을 담고 줄곧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소화기관은 항문을 맨 뒤에 포진하고 맛은 물론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 온갖 감각기관을 전면에 배치한 채 먹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파리는 입은 물론 다리에도 맛을 느끼는 수용체를 갖고 있다. 목표물에 착지하자마자 먹을 것인지 아닌지 바로 판단할...

    2025.04.23 20:26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힐러몬스터의 굶기와 폭식 위고비의 탄생
    힐러몬스터의 굶기와 폭식 위고비의 탄생

    “한국인 71세 일생 중 음식물 27t 먹는다.” 이 기사는 1994년 겨울 한 일간지에 실렸다. 약 30년 전의 세상을 살았던 평균 한국인은 하루 약 1㎏이 조금 넘는 양의 음식물을 먹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루 얼마만큼의 음식물을 먹으며 살아갈까? 2022년 보건산업진흥원 통계를 보면 약 1400g이다. 그 가운데 300g은 동물성 식품이 차지한다. 우리는 체중의 약 2%에 해당하는 음식물을 죽을 때까지 매일 먹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주 먹는다. 잘 때를 빼곤 꼬박 세 끼를 챙겨 먹는다. 한 끼 식사를 마치면 소화기관은 서둘러 그 음식물을 소화해 흡수한다. 그런 뒤 다음 끼니를 맞이한다. 우리 장은 깨어 있는 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의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2022년 통계로 돌아가 한국인의 주식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짐작하겠지만 1위는 쌀이고 그다음은 우유, 배추김치가 차지한다. 쌀 120g과 빵이나 가루음식 모두 합쳐 탄수화물 섭취...

    2025.03.19 21:15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겨울, 잎을 떨구다
    겨울, 잎을 떨구다

    “위험해 그 위로 가지 마!” 뭍으로 올라간 자식을 따라 물가까지 쫓아온 어미 물고기가 소리치는 모습을 그린 한 컷짜리 만화는 현재 육지에 사는 모든 네발 동물의 조상이 물고기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왜 물고기가 멀쩡한 물을 떠나 육지를 향했는지 그 이유를 여태 모른다는 인간의 무지를 비웃는다. 좀 심술궂게 따지면 이 만화의 작가가 사춘기를 지나는 말썽꾸러기 자식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질문을 틀어보자. 어미 물고기가 있던 곳은 민물일까, 바닷물일까?잘 모른다. 미국 뉴욕대 의과대학의 생리학자 호머 스미스는 초기 척추동물이 민물에서 비롯했다고 말했다. 민물에 사는 어류와 달리 먼바다의 경골어류가 콩팥에서 여과 장치를 없애버린 현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금기 적은 민물에 사는 물고기는 삼투압 차이 탓에 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막고 체액 안의 염분을 고스란히 지켜야만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염류를 지...

    2025.02.12 21:16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천재와 생활의 달인
    천재와 생활의 달인

    남 말 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는 흔히 천재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개화기 조선의 3대 천재는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그리고 벽초 홍명희다. 이들은 시와 소설을 쓰고 사회적 파급력도 컸지만, 막상 천재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는 지능지수를 기준으로 괴테와 아인슈타인 그리고 다빈치를 꼽기도 한다. 과연 그렇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서양 위주의 평가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이들의 부모나 자식은 천재 당사자보다 유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식물학과 해부학에도 관심이 컸지만 그의 아들이 뭘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광수의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다.인간은 자식을 낳는 과정에서 부모의 염색체를 골고루 뒤섞는다. 천재는 고스톱 화투판에서 나타날 수 있는 최고의 패다. 하지만 다음 판에서 그 패는 흐트러져 뒤섞인다. 생식 과정에 남성과 여성, 두 성이 참여하기 때문에 생물...

    2025.01.01 20:57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손등의 쓸모
    손등의 쓸모

    어른의 뼈는 남녀 구분 없이 206개다. 한쪽 손에는 27개의 뼈가 있다. 잠시 손바닥을 펴보자. 엄지를 뺀 나머지 네 손가락에서 12개의 마디를 볼 수 있다. 각 마디가 하나의 뼈다. 여기에 엄지의 마디 2개를 합치면 손가락뼈는 모두 14개다. 손바닥에 든 손허리뼈는 5개로 각 손가락에 하나씩 배당된다. 팔과 연결되는 부위인 손목에는 8개의 뼈가 있다. 발에는 26개의 뼈가 들어 있다. 발목뼈가 하나 적기 때문이다. 두 손과 두 발을 다 합치면 106개로 전체 뼈의 절반이 넘는다. 많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 사촌보다 더 넓은 중추신경계 영역이 손, 특히 엄지손가락을 제어하는 데 관여한다. 사람 엄지손가락의 가장 큰 특징은 회전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엄지는 다른 모든 손가락과 가장 넓게 마주칠 수 있다. 물건을 감싸거나 포도알을 쥐는 데 이상적인 구조다. 자세한 역사와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아마 손의 구조도 더 정교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엄...

    2024.11.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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