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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 [고병권의 묵묵]박훈일이 지키고 있는 김영갑
    박훈일이 지키고 있는 김영갑

    제주 갤러리 두모악을 만든 김영갑 그의 사후에도 20년 지켜낸 박 관장 재정난 딛고 “모두가 주인” 되려면 정부와 제주도가 해야 할 일이 있다얼마 전 강연을 위해 제주에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다녀왔다. 개인 공부가 많이 밀려 있는 터라 원고나 강연 요청에 잘 응하지 않는데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채권자가 모르는 내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15년 전, 삶의 기반이었던 공동체가 해체된 후 나는 분노와 두려움, 불안으로 날뛰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제주로 도망쳤다. 틈만 나면 마음속에 미운 사람을 불러다가 할퀴고 찌르고 나 자신까지도 고문대에 올려놓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갑을 모른 채 김영갑갤러리를 찾았다. 그날의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내 마음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노을이 붉게 번졌다.그날 나는 김영갑이 말한 동박새였는지도 모르겠다. 동백꽃을 꽂아두었더니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온 작은 새. “요란스럽...

    2025.10.16 20:23

  • [고병권의 묵묵]어느 팔레스타인 학자의 필사적 투쟁
    어느 팔레스타인 학자의 필사적 투쟁

    너무 굶어서 명료한 사고 어려워 혈당 떨어져 쓰러졌을 때도 작업 건물 없는 대학 지키는 연구자들 이제 전 세계 학자들이 응답해야아메드 카말 주니나는 가자지구 알아크사대학의 응용언어학자이다. 지난달 그는 영국 신문 가디언에 ‘가자지구에서 학자로서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한 투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나는 굶주림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너무 굶어서 명료하게 사고하는 게 어렵고, 몸이 약해져 오랜 시간 앉아 있기도 힘듭니다.”현재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식품, 의약품, 연료 등의 반입이 차단된 상태다. 유엔 기구와 비영리단체 등으로 구성된 기근 감시 시스템인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에 따르면 이 지역은 지금 ‘최고 위험’ 단계에 있다. 50만명 이상의 인구가 재앙적 기근 상태에 있으며 이미 수백명의 아사자가 생겨났다.“겨우 한 단락의 글을 살펴보고 있는데 위장에 경련이 일어납니다. 수분이 빠져나간 손가락은 무척 건조하고 저...

    2025.09.18 20:05

  • [고병권의 묵묵]새만금, 아니 억만금의 공항이 들어선대도
    새만금, 아니 억만금의 공항이 들어선대도

    내가 최근에야 배운 용어가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정할 때 쓰는 말이다. 유네스코의 운영지침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지 실감이 난다. 여기서 ‘탁월하다’는 것은 ‘독보적’이라는 뜻이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급의 중요성을 가리킨다. 또 ‘보편적’이라는 것은 해당 유산이 특정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전체 인류에게, 그것도 현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길게 말할 것이 없다. “이 유산을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국제사회 전체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도대체 세상 어떤 것에 이런 가치가 부여될까. 유네스코는 전남 신안에서 충남 서천으로 이어진 갯벌이 그렇다고 했다. 갯벌은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까지 초장거리 이동을 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라고 한다. 이를테면 큰뒷부리도요 같은 새가 그렇다....

    2025.08.21 21:16

  • [고병권의 묵묵]시인의 탄생
    시인의 탄생

    사람들도 믿지 않고 나도 감추곤 하는 대학 경력 두 가지. 내가 화학과를 졸업했다는 것과 문학 동아리에 있었다는 것(결국 이렇게 만천하에 드러낸다). 감추는 이유는 똑같다. 화학도, 문학도 아는 게 없어서다. 화학은 좀 즉흥적으로 선택한 전공이지만 문학 동아리 문을 두드린 건 오랫동안 맺힌 한이 있어서다. 중고등학교 때 문예반을 가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문예반은 동아리를 정하지 못한 친구들을 모아 자습시키는 곳이었다. 나는 선택했지만, 학교에서는 나를 선택하지 못한 사람의 그룹으로 묶었다. 그때 맺힌 한을 풀기 위해 간 곳인데 정작 대학의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서는 사회과학책만 읽고 시국 토론만 했다. 도무지 문학 할 틈이 없는 사람처럼 동아리 방에도 자주 들르지 못했다.결국 나는 시를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시를 알아보는 눈은 없고 좋아하는 시가 있을 뿐이다. 대학 시절 시집을 꽤 모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일찌감치 시인의 꿈을 접게 하는 이성복, 황지우,...

    2025.07.24 21:37

  • [고병권의 묵묵]약자의 눈 2
    약자의 눈 2

    5년 전 이 지면에 ‘약자의 눈’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당시 출범한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약자의 눈’을 응원하고 싶었다.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일단 10점 정도 감점하고 보는 내가 감점 없이 10점을 더한 글을 쓴 것은 이들이 주관한 토론회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는데, 내게 토론회를 진행하는 좌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가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의원들이 직접 자리까지 마련해서 듣겠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다.모두 알듯이 국회의원들은 중요한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바쁜 사람들이다. 자료집에는 얼굴과 말을 빠짐없이 박아 넣지만 정작 토론회 참석은 자료집의 얼굴과 말로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석을 했다고 해도 그저 축사가 목적인 사람들이다. 이날의 토론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여섯 명의 의원들이 참석했는데, 행사 실무자는 내게 이분들 모두 바쁘니 인사말만 하고 떠날 수 있게 배려...

    2025.06.26 21:38

  • [고병권의 묵묵]응답하려는 자와 응징하려는 자
    응답하려는 자와 응징하려는 자

    이준석이 던진 ‘소수자 시위’ 해법‘정치’ 아닌 ‘치안’의 문제로 풀어 책임있는 정치가, 목소리에 ‘응답’ 목소리를 응징하는 사람은 안 돼대선 후보자 토론회도 모두 끝나고 사실상 투표만 남았다. 도대체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한심해하면서도 세 차례 토론회를 다 보고 말았다. 토론회 전체를 통틀어 그나마 의미 있다고 생각한 시간은 40초 정도다. 그것은 두 번째 토론회 날 이준석 후보의 질문에 권영국 후보가 답변하던 장면에서 나왔다.이준석 후보는 전장연과 동덕여대 사태를 언급하며 권영국 후보에게 “대통령이 된다면 사회질서를 훼손하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권영국 후보는 “질문이 잘못됐다”며 “전장연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것”이라며 “이준석 후보는 결과에 따른 갈등 사항만 이야기한다”고 지적했다....

    2025.05.29 20:57

  • [고병권의 묵묵]종탑 위의 천사
    종탑 위의 천사

    파울 클레의 작품 ‘새로운 천사’.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응시하고 있지만 거기서 금방 멀어질 것 같다. 거센 바람이 그를 하늘로 밀어 올리고 있어서다. 발터 벤야민은 이 그림을 보고 ‘역사의 천사’라는 게 있다면 그도 이런 모습일 거라고 했다. 벤야민에 따르면 우리 눈에 사건들의 흐름으로 보이는 것이 이 천사의 눈에는 잔해 더미의 축적이다. 천사는 잔해 더미에 머물며 조각난 것들을 이어 붙이려 하지만, 미래로 불어대는 거센 바람이 그를 하늘로 밀어붙인다. 그를 따라 잔해 더미도 쓰레기산처럼 하늘로 솟아오른다. 벤야민은 사람들이 말하는 진보란 바로 이 바람을 일컫는 것이라고 했다.지난해 12월3일, 국회 앞으로 밀려드는 계엄군과 시민들을 보다가 뜬금없이 이 천사가 떠올랐다. 그날은 ‘세계 장애인의날’이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 권리 입법을 촉구하며 국회에서 1박2일 투쟁을 벌일 예정이었다. 오후에 국회 본청 앞에서 결의대회가 열렸다. 대표 구호는 ‘장애인도 시민으...

    2025.05.01 20:18

  • [고병권의 묵묵]불가능성에서 찾아낸 가능성
    불가능성에서 찾아낸 가능성

    중증장애인들의 배움과 공부는 한국 사회 전체의 변혁과 연결“학생이 되려면 투사 먼저 돼야” ‘불가능’에서 혁명의 씨앗 발견지난해 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지난 16년 동안 이어온 직함이다. 2008년 가을밤의 첫 수업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업을 몇 시간 앞두고 야학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수업 형태로 진행한다고 했다. 현장수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견학이나 야유회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막상 가보니 시위 현장이었다. 그날 서울시교육감이 장애인교육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하자 교사와 학생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수업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몸싸움이 계속되었다. 수업이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수업시간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수업 대형이 만들어졌다. 얼떨결에 학생들 앞에 선 나는 경찰을 등진 채 철학자 스피노자의 신과 선악 개념에 대해 강의했다.갑자기 시위를 중단하고서 시위 내용과 상관도 없는...

    2025.01.09 21:10

  • [고병권의 묵묵]2024년 12월3일
    2024년 12월3일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날장애인 농성장 차려졌던 그곳계엄에 분노한 시민들로 가득이 촛불에, 희망 하나 보탠다12월3일.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날’이었다. 장애인들이 출근길 지하철행동을 시작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전장연은 오후에 국회 앞에서 장애인 권리 입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밤에 국회의사당역에서 노숙을 할 예정이었다. 내가 속한 노들야학 사람들 상당수가 이 투쟁에 결합하기로 했다. 그런데 전날 자정 무렵 야학에서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12월3일의 일정을 조정해야겠다고, 이런 ‘힘든 마음’으로는 투쟁에 결합하는 게 무리라고.12월3일. 우리는 상중이었다. 서울대병원 영안실에는 야학 학생인 지민이 누워 있었다. 발달장애인이었던 지민은 야학에서 붙박이처럼 지냈다. 사람들이 ‘노들에 살어리랏다상’을 수여했을 정도다. 지민은 서울시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노동자’이기도 했다. 수줍음이 많아 뒤로 숨던 지민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면서 ...

    2024.12.12 20:36

  • [고병권의 묵묵]이 땅에 살기 위하여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매년 이맘때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수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렸다. 그런데 작년부터 특별한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자대회에 참석하는데 뭐가 특별할까 싶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노동자들은 사회가 노동자로서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노동자대회 참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주장이고 투쟁이다.서울시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서 해고한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지금 이들은 수백일째 해고에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 해고노동자라는 비극적 이름마저 이들에게는 획득 지위가 된 셈이다.고용승계 없이 공공 사업 폐지한순간 일자리 잃은 중증장애인일은 했지만 노동자가 아니다?죽지 않으려 얼마나 싸워야 하나한 번에 외우기도 힘든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라는 긴 이름을 보고 있노라면 중증장애인들의 설움과 불안이...

    2024.11.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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