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제출일에 “쓰던 글을 날렸어요”라 말하는 학생을 가끔 마주할 때면 겉으론 고개 끄덕이면서도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 문서 프로그램상 자동저장 기능이 내장된 데다 작업 도중 수시로 저장할 텐데 그게 가능한가 싶었다. 저마다 방법이 다르겠지만, 그간 난 시간대별로 일련번호 붙인 문서를 몇십분 간격으로 드라이브에 저장하고 ‘내게 보내는 메일’로도 발송하는 고전적 방법을 사용해왔다. 실수로 몇문장 삭제될 순 있더라도 몇시간 동안 작업한 분량이 통째로 사라질 순 없다고 여겨왔다. 직접 겪기 전까진 그랬다.중요한 원고를 제출하기 전날 밤이었다. 선배 선생님 두 분이 지구 건너편에서 초고를 읽은 후 변경내용 추적 기능으로 수정사항과 제언을 꼼꼼하게 적어 보내주셨다. 조언들로부터 도출한 결론은 절반 이상을 ‘다시 쓰기’였다. 마감 앞둔 막바지 단계라 힘내서 밤새워보기로 했다. 앞부분부터 한 문장씩 고쳐가다 마침내 마지막 단락의 수정을 앞두고 창밖을 보니 동틀 무렵이었다. 졸음을 밀어내...
2025.10.21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