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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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백성의 고통은 위정자의 안락 “전해오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자신을 안락하게 하고, 남을 해함으로써 자신을 이롭게 한다.” 맹자와 함께 공자 사후 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 순자의 증언이다. 한마디로 남의 불행을 자기 행복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유학자들이 경전 중의 경전으로 매우 중시했던 <시경>에는 이러한 시구도 실려 있다. “백성이 받는 재난은 하늘이 내린 것 아니네. 모이면 말만 많고 등지면 미워하는, 오로지 다투는 사람들 때문이라네.” 여기서 백성의 원문은 ‘하민(下民)’이다. 시인은 ‘민’ 한 글자로도 백성이라는 뜻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음에도 ‘하’를 넣었다. 은연중에 ‘상층 대 하층’이라는 구도를 소환함으로써 서로 헐뜯기에 여념 없었던 이들이 상층 사람임을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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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마음을 저버린다는 것 영화나 소설에서 볼 법했던 모습을 삶터에서 자주 접하는 시절이다. 자기가 달려가는 길 끝에 절벽이 있을 줄 모르고 욕망을 주체치 못해 끝까지 달려가다가 고꾸라지는 이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맹자식으로 말하자면 자포자기의 전형이다. 흔히 자포자기라고 하면 모든 일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무기력하게 퍼져 있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자포자기라는 말의 지식재산권자 격인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 예의를 비방하며 말하는 것을 일러 ‘자포(自暴)’라 하고, 인의를 행치 않음을 일러 ‘자기(自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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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미래 먹거리와 ‘살거리’ 지난달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대폭 증액한 35조3000억원으로 편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예산은 오롯이 과학기술계 몫인데, 대폭 증액한 근거는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등 미래 먹거리 방면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나라와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챙김은 국가가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이기에 R&D 예산 증액은 무척 반길 일이다. 그런데 국가는 미래 먹거리만 챙기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먹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살거리’ 또한 국가가 응당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인문사회계의 R&D 예산이 대폭은 고사하고 다소라도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의 핵심 의무를 저버린 행태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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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공정의 토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닦고(修) 가문을 가지런하게 하며(齊) 나라를 다스리고(治) 천하를 태평케 한다(平)”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 동사(修·齊·治·平)에는 모두 ‘공평무사하게 하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공평무사하게 한다는 말을 달리하면 ‘공정하게 한다’이다. 공정함이 개인부터 국가, 세계 차원에 이르기까지 기본이자 궁극의 가치로 제시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공정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이자 시대정신이다. 그렇다 보니 정치인들은 상대를 공격할 때면 줄곧 공정을 들고나오곤 한다. 공정치 못하다는 지적이 그만큼 대중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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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교육부의 재구성 교육부 장관의 자격으로 꼽히는 바를 보면, 교육부 장관이 되려면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사회부총리 역할은 논외로 하자. 사교육 문제 해결, 대학 서열 타파, 지역대학 활성화, 유보통합 관련 정책 역량의 구비는 물론이고 유아·초등·중등·고등 교육 및 평생학습 모두에 밝아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대전환, 글로컬(glocal) 시대 및 다문화·다원화 사회의 일상적 전개 등으로 촉발된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선도적으로 이끌어갈 역량도 갖춰야 한다.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는 각 단계의 교육 내용과 방법, 목표 등에 본질적 차원의 변화와 갱신을 요구하기에, 사실 어느 한 교육 단계에 대한 안목을 지니는 일만 해도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이 이 모두에 대해 준수한 역량을 갖춘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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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평생학습시대와 교육학습부 공자는 학습을 중시했다. 제자들이 “배우고(學) 때때로 익히면(習)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논어>의 첫 구절로 배치한 까닭이다. 그런데 학습에 중점을 둔 공자의 관점은 실제 역사에선 교수자와 가르치기를 중시하는 관점으로 변형되었다. 그 결과 스승이 임금, 아버지와 동렬로 추켜세워졌고, 스승 중심의 위로부터 아래로의 가르치기가 올바른 근간이라고 인식됐다. 이는 근대 이후까지도 이어졌고, 교육과 학습을 국가 차원에서 관장하는 부처의 이름도 문화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교육부 등처럼 교육을 주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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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인사권자의 눈이 높다고 하려면 국민주권정부의 초대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자 대통령비서실장은 인사권자의 눈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듣는 순간 의아했다. 몇몇 장관 후보자의 흠결이 작다고 할 수는 없어서였다. 맹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순자는 신하를 넷으로 나눴다. 태신(態臣), 찬신(簒臣), 공신(功臣), 성신(聖臣)이 그것이다. 그는 군주가 성신을 등용하면 존귀해지고 공신을 등용하면 영예로워진다고 했다. 백성들을 잘 단합하게 하고 외환을 잘 막으며 군주에게 충성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데 지치지 않는 신하가 공신이고, 이에 더해 예기치 못한 일이나 변화에 잘 대처하고 기존 시스템을 넘어서는 것에 기민하게 대응해 법제도를 빈틈없이 마련하는 신하가 성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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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돈은 억울, 알아서 기는 사람이 유죄 돈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다. 2100여년 전 <사기>를 쓴 사마천은 이렇게 통찰했다.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 배 부자이면 헐뜯지만 백 배이면 그를 두려워한다. 천 배이면 그의 일을 대신해주고 만 배이면 그의 하인이 되고자 한다. 이는 세상사의 섭리다. 이를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남들보다 돈을 열 배 더 갖고 있으면 남을 굳이 헐뜯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진 돈이 남들의 백 배이면 남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게끔 하고, 천 배이면 남들에게 자기 일을 전가하며, 만 배이면 남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다. 가진 돈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질수록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정도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저 옛날 중국에서나 있었던 일이 아닌 듯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그 옛날 사마천의 통찰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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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까맣지 않은 까마귀를 인정하는 눈 회색 바위여도 아침 햇살이 비쳐 들면 황금빛을 띤다. 그러다 한낮의 작열하는 광선이 내리쬐면 하얗게 반짝거리고, 저녁 되어 노을빛이 비쳐 들면 자줏빛으로 물들여진다. 이를 두고 연암 박지원은 색 속에 빛이 있어 그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암이 든 사례는 까마귀였다. 다들 까마귀는 당연히 까맣다고 여기지만, 연암이 보니 어떤 때는 뽀얀 황금빛이 감돌았고, 진한 녹색으로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발산되어 눈앞에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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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위정자가 총명해지려면 옛날 당나라 때 백낙천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한시의 양대 산맥인 이백, 두보와 이름을 나란히 했던 대시인이다. 그런데 그는 정사의 잘잘못을 가려 황제에게 간언을 올리는 관직에 있었을 때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올곧은 관리이기도 했다. 다음은 그가 올린 간언의 한 대목이다. “천자의 귀는 스스로 밝아질 수 없으니 천하 사람들의 귀를 합하여 들은 후라야 밝아지게 됩니다. 천자의 눈은 스스로 밝아질 수 없으니 천하 사람들의 눈을 합하여 본 후라야 밝아지게 됩니다. 천자의 마음은 스스로 훌륭해질 수 없으니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합하여 헤아린 후라야 훌륭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천자께서 자기 두 귀로만 듣고 두 눈으로만 보며 한 마음으로만 헤아린다면 고작 열 걸음 안도 못 들으며, 백 걸음 밖은 볼 수 없게 되고, 궁궐 밖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넓디넓은 천하와 복잡다단한 정사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책림(策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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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권위와 다양성 다시 강조하지만,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자는 목표를 공유하며 모여 사는 곳이 사회다. 그래서 사회에는 권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기꺼이 동의하는 권위가 발휘되어야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갈등할 때 조정하고 중재할 수 있어서다. 그러면 권위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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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전문성 포기는 도덕성 포기 나는 선거철만 되면 곧잘 무국적자가 되고 만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국민이 원해서 출마한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의 출마를 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법원에 의해 무국적자로 내몰렸다. 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대법관들은 “일반 국민의 시각”을 강조하며 고등법원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국민으로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법 정신과 법리에 입각한 엄밀한 판결이었기에 나는 또다시 일반 국민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일반과 비(非)일반을 나누는 것이며, 또 일반 국민의 생각은 통일되어 있다고 믿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