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
음악작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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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모든 분류는 억압적이다 자주 강의를 나간다. 많으면 한 달에 서너 번, 전국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지역이 없을 정도다. 어느 날 불현듯, 내가 강의하기를 즐기는 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된 일이 있다. 질문을 꼭 받는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도 질문 하나를 받았다. 기실,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장르 구분이 잘 안 돼요.” 장르는 도구다.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설명하기 위해 발명해낸 결과물이다. 물론 나도 장르에 목매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차이에 대해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학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장르를 명확하게 포착하고 싶어 로이 셔커의 <대중음악사전>, 딕 헵디지의 <하위문화>, 사이먼 프리스의 <사운드의 힘>, 한국 음악 평론가들이 공저한 <얼트 문화와 록 음악> 등의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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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기어코 설득하는 수밖에 33장인 동시에 1장이다. 만약 테일러 스위프트 없이는 못 사는 팬이라면 신보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The Life of a Showgirl)>(사진)은 상당한 지출을 요구할 것이다. 1장의 음반을 33가지 버전으로 발매했기 때문이다. 지난 음반도 만만치 않았다. 25개였다. 불법은 아니지만,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앨범은 음악적 논쟁도 불러왔다. 과거로 회귀한 음악을 추구했지만, 평가는 일관된 찬사를 받았던 2020년쯤과 거리가 멀다. 차트 성적은 그와 별개로 신기록을 경신할 예정이다. K팝에서 배운 다종화 전략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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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가을의 사운드트랙 가을이다. 음악 듣기에 안 좋은 계절은 없지만,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가을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을 대표하는 곡은 무진장이다. 그중에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가 빠질 수 없다. 원래는 프랑스 음악이다. 이브 몽탕의 1949년 버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미국 작사가 조니 머서가 영어 가사를 붙여 발표했다.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프랑스 오리지널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지만, 조니 머서는 이를 아예 빼버렸다. 그래야 히트할 수 있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영어로 불리면서 이 곡은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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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쓸쓸해서 더 잊히지 않는 서정 애정 깊은 뮤지션의 신보를 듣기 전, 주문을 외운다. 야발라바히기야는 아니다. 어차피 덩크슛 못한다. 그저 “음반이 좋기를” 하면서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써져야만 한다. 그러나 일주일마다 땔감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훌륭한 음악은 지금도 창조되고 있다. 매일 업로드되는 10만 곡 안에 멋진 음악이 없을 수 없다. 즉,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개인이 다 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주는 다행이다. 권나무가 신보 <삶의 향기·사진>를 냈다. 그가 쓴 앨범 설명을 요약해서 듣는다. “많은 게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감각합니다.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사이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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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오늘만 사는 로큰롤 스타 1990년대 브릿팝 시대가 있었다. 블러와 오아시스에 스웨이드와 펄프를 합쳐 브릿팝 ‘빅4’라고 한다. 넷 중 앨범 판매량에 기반한 인지도 1위는 오아시스다. 국내 인기 역시 나머지 셋을 압도한다. 2006년 첫 내한 전, 노엘 갤러거와 일대일로 인터뷰했다. 오래전이라 희미하지만 하나만은 기억한다. “새 앨범 빼고 최고작은 무엇이냐?” 그는 이렇게 말했다. “1집.”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다시 한번 확인했다. “2집 아니고?” 그의 주장은 확고했다.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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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카테고리화를 거부하다 한 남자가 거리를 걷다 인터뷰한다. “내 이름은 존 배티스트. 당신을 모르더라도 당신을 사랑해요. 왜냐하면 이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함께해야 하는 모습일 테니까요.” 세상 물정 모른다고, 너무 순진한 발언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진짜로 그렇게 한다. 그에게 뮤지션의 의무란 음악으로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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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취향 이전에 습관 과학 저술가 스티브 존스가 주창한 ‘느린 예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에 따르면 영감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무르익고, 실현하려면 큰 노력을 요구한다. 피카소의 말과 어쩌면 일맥상통한다. 이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 크라잉넛이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1995년 8월경 홍대 앞 작은 클럽 드럭이 시작이었다. 1996년쯤 그들의 라이브를 처음 봤던 때를 잊지 못한다. 진짜 못했다. 어쩌면 펑크다웠다고 할까. 그런데 계속 기억에 남았다. 좌충우돌하는 에너지에서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들의 역사가 30년 동안 이어질 줄은 몰랐다.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 누구도 그들이 세대를 뛰어넘는 록 찬가를 내놓고, 장수 밴드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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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에로스와 타나토스 여전히 잘못 쓰는 용어가 있다. 신디사이저가 그렇다. 돼지 꼬리(ð)가 아니라 번데기(o) 발음이다. 한글 표기는 신시사이저, 줄이면 신스다. 신시사이저는 여러 주파수의 소리를 합성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악기다. 1960년대부터 대중음악에 쓰였지만, 거대한 크기에 초고가를 자랑했다. 비틀스 같은 밴드가 아니면 써볼 엄두조차 못 냈다. 이후 1980년대가 되면서 신시사이저는 가격과 크기 모두 경량화에 성공했다. 신스팝이 당시 정점을 찍을 수 있던 기술적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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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지식보다는 상상력 1980년대 뉴웨이브는 원래 1970년대 중반 펑크를 수식하는 용어로 쓰였다. 기존 록과 다른 흐름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이후 뉴웨이브는 후기 펑크, 신스팝으로 세분되면서 폭발했다. 듀란듀란, 컬처클럽, 펫숍보이즈, 아하 등등. 그중 대중적으로는 덜 조명받았지만, 예술적으로 가장 높이 날아오른 밴드가 있다. 1974년 데이비드 번과 예술학교 동창 2명을 중심으로 결성된 ‘토킹 헤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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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깊고 넓은 틈을 인정하라 미국 시카고 도심에서 개최되는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 다녀왔다. 올해 롤라팔루자에는 한국 그룹이 여럿 참여했다. 트와이스(사진)가 K팝 걸그룹 최초로 헤드라이너를 맡았고, 보이넥스트도어,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킥플립, 웨이브투어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롤라팔루자는 관객층이 유독 젊은 것으로 유명하다. 10대와 20대, 즉 미국 Z세대가 핵심 타깃이다. 한국 뮤지션 참여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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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장르는 도구일 뿐 대중음악계의 오랜 신화가 있다. 록에 관한 것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록이 음악적으로 더 탁월하다는 믿음이 설득력을 얻었다. 비평가 집단이 만든 고정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롤링 스톤’을 비롯한 음악 전문지가 1960년대 중반부터 록을 심오한 예술로 특별대우하면서 록 우월주의가 뿌리내렸다. 195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1950년대 로큰롤은 그냥 댄스 음악이었다. 당시 10대는 격렬한 로큰롤에 맞춰 몸을 흔들고 고함을 질렀다. 가사는 사랑 혹은 이별 타령이 거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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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분노를 경영하라 가끔 음악 관련 심사를 맡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새로운 재능을 먼저 포착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심사를 통해 여러 뮤지션을 만났다. 그중 이 가수를 처음 접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입춘’(2022)이라는 곡으로 널리 알려진 한로로(사진)다. 인터뷰에 따르면 ‘입춘’의 주인공은 ‘우리’다. 그러나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설렘과 거리가 멀다. 곡에서 주인공은 “아슬히 고개 내민” 자신에게 봄 인사 건네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한로로의 말을 듣는다. “넘어지더라도 꽃피우고 싶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달라는 의도다.” 한로로는 후렴구의 폭주하는 록 기타 연주를 통해 화자의 간절함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Z세대의 록스타로 불리는 가장 큰 바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