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셰프
최신기사
-
일상 한 그릇 구운 고기든 날고기든 저는 한 점 더 먹겠습니다 한 방송을 통해 ‘인간의 혀는 생고기 맛을 느낄 수 없다’는 주제가 잠시 주목을 받았다. 어느 요리사가 “생고기의 단백질 분자는 인간의 미뢰가 느낄 수 있는 분자 크기보다 커서 우리가 그 맛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거기에 수많은 미식가와 요리사들이 소셜미디어로 한마디씩 보태며 소란스러워지는 일이 있었다.
-
일상 한 그릇 내일을 위한 디저트 국내 제과제빵 업계에서 양질의 책을 출판하기로 정평이 난 어느 출판사에서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셰프 중 32명을 모아 9월 중순 발간을 목표로 레시피북을 내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출판사는 꽤 오랫동안 디저트 관련 책만 만들다 우연한 기회로 나와 처음으로 요리책을 만들기도 한 곳이었는데, 이번 청탁도 그것이 연이 된 듯했다.
-
일상 한 그릇 치킨 오어 포크? 출장 일정이 잡혀 비행기를 탔다. 내게 제안이 오는 해외 업무의 대부분은 유럽과 관련된 것들이라 매번 10시간이 좀 더 걸리는 긴 이동에 공항에서부터 지쳐버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가게 되어 고작 6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짧은 이동 덕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유럽행 비행기에서는 식사를 2번 받아먹는데, 동남아시아행은 거리가 짧아서인지 1회의 식사만 준비되는 것 같았다.
-
일상 한 그릇 정수기 매니저와 호박잎 집에서 정수기를 쓴 지가 이제 곧 10년이 되어간다.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의 체내 축적 등 이슈로 플라스틱병에 담아 파는 생수를 사 마시기 꺼리는 분위기지만, 내가 첫 정수기를 집에 들였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아는 선배가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설치 신청을 했던 것뿐이다.
-
일상 한 그릇 간식과 건강 사이에서 외부 업무로 미팅이 생겨 대로변 카페에 들어갔다. 빵과 음료를 함께 파는 곳이었다. 안에는 아마도 공장에서 납품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빵이 잔뜩 쌓여 있었다. 우리 일행은 대충 아무 커피나 시켜두고 잠깐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었지만, 다른 손님이 모두 줄을 서 빵과 음료를 주문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커피 석 잔에 빵 두 개를 더해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 카페 구석 벽에 기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일상 한 그릇 요리 유튜버가 됐다 최근 유튜브에 채널을 하나 열었다. 다른 많은 셰프가 진작부터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것을 보면서도, 유튜브라는 특정 사이트까지 찾아 들어가 영상을 보는 일이 낯설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리모컨이나 만지작거리는 것에 익숙했던 나로선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 하나가 촬영과 편집을 맡겠다고 나서 준 덕에 함께 이런저런 콘텐츠를 시도해 보고 있다. 요리와 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지인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셰프로 일하고 있으니 카메라 앞에서 요리도 하고 있다.
-
일상 한 그릇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 봄을 맞아 베란다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중 부피가 제법 큰 것들을 추려 집 앞에 내놓았더니 그야말로 한 무더기였다. 주민센터로 가 대형 폐기물 수거 신청서를 끊고 돌아오는데, 어느 가게 구석에 뜬금없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아직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4월이 되어 결국 봄을 맞이했고, 드디어 모두가 벚꽃놀이에 두릅이며 도다리며 제철 재료 이야기를 하면서 바뀐 계절을 이야기하는데, 초록색과 빨간색의 성탄 장식은 꽤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마 가게 주인이 계절이 변하는 것에 큰 감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딱히 치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기야 내 지인 중 하나도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에 마땅한 여유 공간이 없어, 트리는 사시사철 한자리에 두고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에만 장식을 달아놓고는 했다.
-
일상 한 그릇 일회용기에 담아 버리는 존엄 연휴 동안 지인의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꽤 오래전 지어진 탓에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는 공간이 따로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만 주차장 한쪽으로 이동식 수거장을 설치해 입주민들의 쓰레기를 거둬 처리한다고 했다. 하필이면 지난 연휴에 재활용 쓰레기 수거일이 겹쳐 2주치 쓰레기를 집 안에 쌓아두고 지내야 했다고 하는데,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업체도 휴일은 챙겨야 할 테니 관리사무소나 입주민들 입장도 참 난처하겠다 싶었다. 지인은 그렇게 쓰레기 버리는 날만 벼르며 연휴를 보냈다.
-
일상 한 그릇 조문객에 민어 대접을…죽을 때까지 ‘먹을 걱정’ 지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평소 그에게 끼친 온갖 민폐를 생각하면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총알택시를 타고 인천으로 향해야 마땅했지만, 선약을 핑계로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갈 수 있었다. 전해 들은 바로는 고인은 자신의 장례식에 올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이라 했다고 한다.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많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딸들이 많고, 또 그들의 인망이 두터워서인지 장례식장은 조문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단 조문객 때문이 아니어도 모든 장례식은 고인에 대한 회상으로 찬다. 그리고 딸이 회상하는 아버지는 더욱 선명하다.
-
일상 한 그릇 예측할 수 없는 하루 13년째 쭉 쓰고 있는 상표의 다이어리 한 권에 적을 수 있는 일정은 다음 해의 1월4일까지라 늦어도 12월 마지막 주에는 문고로 가 내년도 다이어리를 장만하고 가는 해의 마지막 일정과 오는 해의 첫 일정을 옮겨 적는다. 그렇게 두 해의 가운데에서 끝과 시작을 보내다 보면 연하장이 들어있는 몇 개의 소포가 집과 가게로 날아든다. 뜯어보면 대개 달력이나 열쇠고리 같은 것들이다. 열쇠고리는 쓸모를 찾을 때까지 서랍에 넣어두면 되고, 달력은 부모님 댁으로 보내거나 서재에 걸어두면 되는데, 1월이 되어서야 도착한 다이어리들을 보면 조금 난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