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배
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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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우리은하, 아니 우리 은하 우리말 띄어쓰기는 언제나 헷갈린다. 문장의 숨을 어디에서 쉬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어쩌면 맞춤법이라는 체계 속에서 가장 까다롭고도 감각적인 규칙일지 모른다. 그런 띄어쓰기 속에서, 나는 천문학자로서 더욱 혼란스러운 단어 하나를 자주 마주한다. 바로 ‘우리 은하’다. 지구, 태양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거대한 고향. 지름만 해도 10만광년에 달하는 이 장대한 별들의 집합을 우리는 ‘우리 은하’라고 부른다. 이 표현에는 나와 당신, 그리고 아직 만난 적 없는 외계 생명체들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은하’에 속해 있다. 그렇기에 이 단어는 유독 다정하고 서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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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기적’에 대한 면역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어느 날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 딱 적당한 양의 바닷물이 한곳에 모여있게 된 걸까? 그리고 그는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기적이 벌어질 수 있도록 해준 어떤 거대한 힘이 바다 밖에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천문학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기적이 있다. 우리 우주가 너무 완벽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점이다. 이 우주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지적 존재로 키워내는 것에 성공했다. 우리가 바로 그 위대한 승리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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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시선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가 나는 혐오한다. 나에게도 미움의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은 은하수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천문학자가 은하수를 미워한다니?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은하수는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은하의 단면이다. 우리는 지름 10만광년의 거대한 별 원반 변두리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 갇힌 채 우주를 본다. 고작 수천, 수만 광년 거리에 놓인 가까운 별과 가스 구름, 외계 행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 은하수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일 것이다. 자신이 알고 싶은 모든 우주의 비밀이 은하수를 따라 흘러가고 있을 테니까. 그런 천문학자들은 은하수를 사랑스러운 ‘밀키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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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어중간한 인간, 그래서 우주를 느낀다 수학은 언제부터 어려워졌을까? 사탕 몇개 더하기 빼기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점차 복잡한 상황이 주어지기 시작한다. 철수가 물에 소금을 타기 시작했을 때, 영희가 주머니에서 구슬을 뽑기 시작했을 때, 또는 수식에 갑자기 알파벳이 등장하면서 이게 수학인지 영어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허수를 처음 만났던 순간의 당혹스러움이 잊히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다. 허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수학적 목적과 기능을 위해 인공적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허수는 단지 인간의 손으로 탄생한 하나의 발명품이라고 봐야 할까? 솔직히 그것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단순히 편의 때문에 만든 인공적인 도구로만 치부하기에는 기존 다른 수학 체계와 너무나 잘 맞물려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수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에 숨어있던 세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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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과학기술 사이 쉼표 하나 대한민국 헌법 127조 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 짧은 조항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하나는 헌법이 무려 과학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긴 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 과학이 지닌 헌법적 책임이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과학의 가치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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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당신의 우주는 얼마나 넓은가 우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우리가 빛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물리적 반지름은 약 490억광년에 이른다. 이론적으로 모든 인류가 동일한 크기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같은 범위의 우주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인식하고 누리는 세상의 크기는 현격히 다르다. 나와 같은 천문학자들은 어쩌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만큼 거대한 우주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우리은하의 반대편, 10만광년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수억광년 떨어진 두 은하가 충돌하며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은 훨씬 좁은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일상의 공간은 기껏해야 집 앞 편의점까지, 출퇴근하는 회사까지의 거리일 뿐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이들은 이웃 나라나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간헐적으로 관심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은 자신이 속한 도시나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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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중첩의 시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라는 단어 자체에는 단 하나뿐인 세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유일한 세계, 독보적인 공간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그러나 천문학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유일하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구는 무수히 많은 행성들 중 하나일 뿐이며, 태양 또한 수없이 많은 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은하 역시 끝없이 펼쳐진 우주 속 은하들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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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 슬픔을 강요한다는 이들에게 1986년 1월28일, 챌린저 우주왕복선이 발사대를 떠난 지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명의 무거움은 차이가 없지만, 특히 함께 타고 있던 민간인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의 죽음은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우주 탐사에 최초로 참여한 민간인으로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우주정거장에서 학생들에게 원격으로 수업도 진행할 예정이었다. 모두를 위한 우주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그녀의 꿈은 비극적인 참사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