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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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뾰족하고 모난 콘텐츠를 만들자 9월11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얼굴·사진>은 24일까지 77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개봉일 1위였던 <얼굴>은 하루 만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 뒤졌다가 15일부터 다시 10일째 1위를 기록했다. 100만명을 넘을지 궁금하다.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 <기생수: 더 그레이>가 인기를 끌며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제작에 참여한 <계시록>을 연출했고, <선산> <괴이> <방법> 등 각본과 제작 등을 맡은 다수의 드라마를 성공시켰고, 일본의 고전 <가스인간>을 리메이크하는 등 국내외 차기작이 줄줄이 늘어선 연상호에게 <얼굴>의 100만 관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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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제2의 ○○○은 없다 마침내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2억3600만뷰로, 넷플릭스에서 가장 스트리밍이 많이 된 영화에 등극했다. 극장에서 개봉한 싱얼롱 버전은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한편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일본에선 자국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고, 미국에선 외국어 영화 최대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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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전지적 ‘독자’ 시점 20여년 전, 할리우드는 인터랙티브 영화 개발에 나섰다. 게임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부러워하며, 사람들은 이야기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이 크다고 판단했다. 영화에 게임 방식을 접목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화면이 멈추면 선택지가 나온다. 관객이 좌석에 달린 번호판에서 원하는 버튼을 누르면, 다수가 선택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DVD 플레이어에서 영화를 볼 때도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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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K컬처의 새로운 피 지난 6월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에서 4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 등 41개국에서 1위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는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등에서 1위를 기록했고, 삽입곡인 ‘골든’(Golden)과 ‘소다 팝’(Soda Pop)은 유튜브 공개 10여일 만에 1000만뷰와 600만뷰 이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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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인간에게 필요한, 사소한 것들 휴머니즘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이 너무나 추악하고 잔인한 짓을 해도, 결국은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연민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에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그린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휴머니즘의 위대함을 느꼈지만, 반세기가 지난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리낌 없이 타인을 짓밟는 존재인 것일까? 인간은 사악하게 태어난 걸까? 그런 생각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라는 대사에 공감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조금 생각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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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지구의 해피엔드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소행성 충돌, 바이러스, 핵전쟁… 무엇이든 간에 인류는 언젠가 사라진다. 지구 역사에서 인류의 존재는 아주 잠깐의 일이다. 인간이 없어도 지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환경 파괴를 하면서 문명을 확장해 온 인간이 사라지는 결말은, 지구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피엔드가 아닐까? 행복과 불행을 가릴 필요도 없는, 자연의 순환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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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투명한 승부에 끌린다 바둑은 둘 줄 모른다. 할아버지는 바둑을 즐겨 두셨고, 바둑을 두는 친구들과도 가까웠지만 딱히 배우지 않았다. 잡기를 싫어한 건 아니다. 중국과 일본 장기, 체스를 두고 화투와 포커 등도 한다. 바둑을 볼 줄은 안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바둑책을 그냥 읽었고, 신문에 나오는 기보도 매번 들여다봤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집에 있던 책과 잡지, 신문을 다 읽을 때라 그랬다. 그러다 보니 서봉수와 조훈현의 스토리를 알게 됐고 차민수, 이창호, 이세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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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혐오의 시대다. 여성을, 장애인을, 중국인을, 또 누군가를 타당한 이유 없이, 나의 이익이나 권리를 침해했다면서 일방적으로 조롱하고, 배척하고, 탄압한다. 초유의 일이 아니고 낯설지도 않다. 희생양을 만들어 진짜 악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음모는 인류사에 항상 존재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가 있었고, 제국주의 일본의 조센징 혐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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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폭력은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역사는 때로,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개인의 삶을 뒤틀어버린다. 평소에 개인과 집단, 세상, 사회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있건 말건 상관없다. 속세를 떠나 인적 드문 곳에서 홀로 살아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외면해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때로 개인의 모든 것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다. 지진처럼, 해일처럼, 언젠가 우주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소행성처럼 무자비하고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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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사상검증을 해야만 살아남는 지옥 대학 시절, 어느 시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해방 후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의 경험.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장악했던 시골 마을. 늦은 밤에 자고 있으면,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고 손전등을 비춘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바라보지만, 불빛 때문에 누구인지 제대로 식별할 수 없다. 그가 묻는다. “너 어느 편이야?” 물어보는 이가 국군인지, 빨치산인지 알 수 없기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다. 반대쪽이라고 말하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걸린 상황. 가장 두려운 공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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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망상의 세계에서 출몰하는 유령들 12월3일 밤, 10시 반이 지난 시각이었다. 페이스북과 엑스 등 소셜미디어를 뒤적거리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포스팅을 발견했다. 농담인가, 가짜뉴스인가, 소설인가 생각하다가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찾아봤다. 한 줄짜리 속보가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현실의 사건이었다. 다시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의 국회 앞 생중계를 보면서 당황했다.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이전의 계엄이 45년 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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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인생이라는 이름의 회전목마 잠이 잘 들지 않는 밤에는, 빗소리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재클린 듀프레이의 첼로 연주들,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 나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솔리튜드(Solitude)’와 함께 자주 듣는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인생의 회전목마(人生のメリ-ゴ-ランド)’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메인 테마곡. 왈츠풍의 ‘인생의 회전목마’는 차분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여 활기찬 어린 시절에서 청년을 거쳐 절정에 이르렀다가 천천히 정리되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인생을 회전목마에 비유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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