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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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플라멩코 여인, 박재한씨 와인색 댄스화. 7월의 샐비어를 닮은 치마. 화려한 화장, 빨간 귀고리와 머리 장식. 양손에 들린 캐스터네츠. 평소에 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 그리고 무대가 있다. 온전히 그녀를 위한 무대. 무대로 나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우아하게, 공작이 날갯짓을 하듯 쳐드는 그녀. ‘미 세비야나’가 플라멩코 기타 반주와 함께 흐른다. 그녀의 얼굴에 순간 환희에 찬 웃음이 번지는 걸 그녀만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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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멀리 있는 아빠, 알리 나는 ‘사람’으로 왔다. 나는 하늘 아래에 있다. 그리고 땅 위에 서 있다. ‘사람’으로 온 모든 존재가 그렇듯. 나는 북적거리는 저녁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아내의 품에는 6월에 태어난 딸이 안겨 있다. 딸이 태어날 때 나는 멀리 있었다. 멀리, 이곳에. 3700여㎞ 떨어진 이곳에서 내 첫아이인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나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감격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에서 글자를 하나씩 따 ‘하니’라는 이름을 딸에게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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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돼지네 옷집 박경자씨 “내 생애 짓는 마지막 옷? 내 옷 지을 것 같아. 50년 양장점을 했어도 내 맘에 드는 옷감 떠다가 내 옷을 지어 입은 적 없어. 다른 사람들 옷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 입었어.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가 지었지. 하얀색 블라우스하고 바지. 난 하얀색 옷이 좋아. 나이 들어서 하얀색 옷 입으면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데,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새 옷 지어 입고 친구들 만나러 가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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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있는’ 최해경씨 ‘해경, 넌 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나는 날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날 속일 때도 있는 것 같고, 내가 날 받아들이지 않으려 고집을 부릴 때도, 때로는 나에 대한 환상에 휩싸여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요즘 나는 날 알고 싶어서 나에게 질문을 자주 한다. ‘해경, 넌 누구니?’ 나는 마흔두 살 여성(1982년생). 서울에서 나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고 있는 1인 가정의 가장. H출판사의 문학팀 팀장, 농부의 딸. 시를 동경해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 덕분에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한 나. 그리고 문학책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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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미용사 정영희씨 “왜? 난 ‘왜’를 빼고 사는 사람이야. 왜 살아? 그런 거 생각 안 해봤어. 왜 죽어야 해? 그것도 생각 안 해.” 배우 김지미의 미모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 정영희씨. “후회? 모르겠네. 후회하는 거 없는데. 후회 같은 거 안 하고 살아. 나는 그냥 그날 하루 열심히 살아. 그날 안 좋았던 일 있으면 그날 가기 전에 버리고 다음날 새로 시작해.”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그녀의 직업은 미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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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아름다운 뚜리앙 8개월여 전. 뚜리앙은 아침을 먹고 집 문을 나선다. 곱슬곱슬한 머리에, 유색인이지만 피부가 희고 고운 편이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눈동자는 높이 매달린 열매처럼 또렷하고 부드러우며 맑다. 그의 나이 27세. 아침 8시경, 모곡 마을의 새들이 운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북쪽으로 200㎞ 떨어진 산간마을 모곡. 최고급의 루비가 생산되는 곳. 지구에서 소비되는 루비의 60%가 그곳에서 나온다. 모곡 마을이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샨족 사냥꾼 셋이 길을 잃고 헤매다 루비를 발견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마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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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일본군 ‘위안부’ 활동가 김동희씨 22세 때 우연히 참가한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났다. 29세에 활동가가 돼, 매일 활동가로 살다 45세에 스톱. 그즈음 동고동락했던 활동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황장애가 왔다. 할머니들 곁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았던 시간이 부정당하고 의심받고 있었다. 활동가가 아닌 나는 상상조차 한 적 없던 내 청춘을 통째로 상실한 듯한 슬픔을 느꼈다. 불면증약과 수면제, 항우울제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던 날들을 살아내고 49세에 다시 활동가로 돌아온 내게 누군가 물었다. “(활동가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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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밥하는 수녀 그녀를 매일 묵상하게 하는 것은 ‘밥’. 그녀를 매일 실손하게(버리고 잃어버리게) 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두 발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최고의 장소는 ‘부엌’. 월화수목금토일, 아침점심저녁. 그녀는 부엌데기가 돼 종일 부엌에 깃들여 살며 밥을 한다. 밥을 하는 내내 소란스럽게 돌아가던 환풍기가 꺼지고, 고요하고 차분해진 가운데 삼백 사람이 먹을 한 끼를 내보내며 그녀는 새삼스레 감탄한다. “오늘도 기적이 탄생했네!” 밥, 국, 반찬. 한 끼가 완성돼서 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녀는 정말 기적이 탄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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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빗자루와 남기호씨 새벽에 빗자루질을 하려 6수를 했다. 5번 떨어지고 6번 만에 붙었다. 32세 때 첫 도전을 했다. 6명 뽑는데 105명 남짓이 지원했다. 시험 과목은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배근력, 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는 둘 다 1분 62개 이상. 배근력은 180㎏을 당겨야 한다. 만점이 2.75m인 멀리뛰기는 점수제로. 8개월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헬스장에서 살며 홀로 혹독한 훈련을 했다. 체력 시험 통과.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 재수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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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선택’ 그리고 정승희씨 “나 어디서 왔어요?”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했다. 아무도, 아무도. 그녀는 세 살 이전의 ‘나를 모른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태어난 해(1993년) 말고는 내가 어느 달 어느 요일에 태어났는지. 성이 왜 정씨인지. 승희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줬는지. 산골 간이역처럼 쓸쓸하고 적막한 기억의 첫 페이지, 그녀는 춘천의 보육원에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자신에게 엄마아빠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그리움이라는 돌림노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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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거대한 ‘오늘’과 최성일씨 10년 전, 그는 거대한 빙벽 앞에 서 있다. 진짜 같은 가짜 빙벽의 높이는 13m 남짓. 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영화 특수미술’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0, 30대를 영화 특수미술의 매력에 빠져 살며 <광개토대왕> <실미도> <청련> <남극일기> 등등 내로라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특수미술에 참여했다. <히말라야> 제작사에서 ‘빙벽’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재료와 제작 과정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보름 만에 완성한, 다들 감탄하던 빙벽의 수명은 단 이틀. 촬영을 마치자마자 그는 스스로 빙벽을 부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자신이 만든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완성한 작품들이 주는 만족감이 큰 만큼 공허감도 컸다. 십수 년 수입이 불안정했던 데다 어떤 배신으로 파산을 선언해야 할 지경이 된 그는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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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이발사 박씨 아파트 5층 높이의 미루나무가 머쓱히 서 있던 신작로에 이발사 박씨가 마을에 등장한 건 1970년대 말. 다섯 살쯤 먹은 한쪽 다리를 절룩이는 사내아이와 함께였다. 버젓한 버스표지판도 없던 그곳에 그들을 내려준 버스는 알감자 같은 흙먼지를 매달고 거칠게 내달리다 소실점 속으로 사라졌다. 대전과 충북 옥천 사이에 지빠귀 둥지처럼 들어앉은 마을을 두 쪽으로 가르며 관통하던 신작로. 박씨는 신작로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집을 얻어 이발관을 냈다. 농사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마을사람들의 아들들이 도시로, 중동으로 돈을 벌러 떠나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