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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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분노를 터뜨릴까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루미는 길거리에서 진우와 어깨를 부딪쳐 꽈당 넘어진다. 들고 있던 한약 팩들이 산산이 흩어진다. 진우는 넘어진 루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긴커녕 차갑게 내뱉는다. “아이 씨, 조심 좀 해.” 뒤돌아 사라지는 진우 등 뒤로 화가 난 루미가 고함친다. “쟤 뭐라는… 야! 너나 조심해!” 왜 우리는 남들로부터 모욕이나 무시당했을 때 분노를 터뜨릴까? 분노에 대한 기존의 시각은 분노를 세밀히 묘사하거나 다른 대상에 비유한 다음에 인과적 설명이 다 끝났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분노는 외부 위협에 대한 공격적 반응이다’ 혹은 ‘분노는 심적 압력을 배출하는 증기기관이다’ 같은 말은 실상 공허하다. 새로 알게 된 것이 없다. 반면 분노라는 정서가 특정한 진화적 기능을 수행해 먼 과거 조상들의 번식에 도움이 되게끔 자연 선택된 심리적 적응이라는 진화적 시각은 새로운 발견을 이끈다. 분노가 어떤 가설에서 추측하는 기능을 잘해내는 데 필요한 특질을 과연 지니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어떠한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게끔 진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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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피해자를 비난하는가 “죽은 건 안타깝지만 이건 아니지. 세금으로 왜 보상해줘? 나라를 위해 순직한 것도 아니고 서양 귀신 축제에 술 퍼마시고 놀다가 죽은 건데…” 2022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자, 포털 뉴스에는 이처럼 희생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댓글이 넘쳤다. 작년 제주항공 2216편 사고 때도 “유가족들만 횡재네요. 보상금 받을 생각에 속으로는 싱글벙글일 듯”이라는 악성 게시물이 어느 인터넷 동아리에 게시되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참사 피해자에 대한 모욕을 근절할 전담 수사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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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공포영화도 안 봤어? 어둠이 내리면,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1996년 공포영화 <스크림>의 한 장면을 보자. 부모가 다 외출한 집에서 여고생 케이시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살인마 고스트 페이스와 통화 중이다. 순간, 초인종이 울린다. 사색이 된 케이시는 울부짖는다. “누구세요?” 수화기 너머 살인마가 나지막이 나무란다. “‘누구세요?’라고 떠들면 절대 안 돼. 공포영화도 안 봤어? 죽기를 바라는 짓이야.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는지 밖에 나가 조용히 확인하는 게 낫지.” 곧 살펴보겠지만, 이 대사는 우리가 공포물에 빠져드는 진화적 이유를 완벽히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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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시애틀 추장의 편지는 허구다 1854년 북미 원주민의 한 부족을 이끌던 시애틀 추장이 백인 지사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원주민이 대대손손 살아온 영토를 팔고 보호구역으로 옮겨가라는 미국 정부의 통첩에 대한 답변이었다(연설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에게 추장이 보낸 편지라는 설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는 수천 마리의 들소를 보았다. 백인이 달리는 기차에서 총으로 쏴 죽이고 그냥 내버려둔 것이었다… 우리는 안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함을. 마치 핏줄이 한 가족을 묶어주듯이 세상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지 않았다. 인간은 그 안의 한 가닥 실에 불과하다. 인간이 그물에 무슨 짓을 저지르든, 이는 자신에게 저지르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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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소유의 심리 누가 무엇을 소유한다. 참 까다롭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어렵긴 뭐가 어려워? 유아도 그 정도는 다 아는구먼!”이라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올 듯하다. 하긴, 키즈카페에 널린 장난감 블록을 몇개 모아서 놀던 세 살배기 아이도 다른 아이가 그중 하나에 손을 대면 “이건 내 거야!”라고 소리 지른다. 우리는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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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음악은 영역 방어에서 유래했다 탄핵 찬성 집회에서도,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단연 주인공이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결혼식, 장례식, 축제, 스포츠, 종교의식 등 어느 행사에서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음악 말이다. 거리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K팝을 목청껏 떼창한 시민들은 세대를 넘어 모두 하나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음악이 지닌 이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음악은 왜 진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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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부끄러움을 모를까? 진화론적 '윤석열 탐구' 자기가 여전히 으뜸인 줄 아는 우두머리 수컷 침팬지 같았다.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은 구치소 앞을 당당히 걸으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입을 앙다문 채 미소 짓는 특유의 꾸러기 표정이었다. 그는 간간이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환호를 끌어냈다.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대혼란에 몰아넣고, 국격을 추락시킨 내란 수괴치고는 너무나 태연하고 뻔뻔했다. 윤 대통령은 왜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까? 온 국민이 내란 사태로 엄청난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손실을 입었음을 그는 정녕 알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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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운동은 몸에 좋을까 혹시 새해를 맞아 꾸준히 운동하기로 결심하셨는가? 빈정댈 의도는 전혀 없지만, 지금쯤 그 계획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인 가운데 운동 부족인 사람이 열 명 중 여섯 명이나 된다. 세계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사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 헬스장은 섬뜩한 고문기구들이 늘어선 귀신의 집을 연상케 한다. 러닝머신부터가 19세기 영국에서 죄수에게 중노동을 시키기 위한 징벌도구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운동은 고역이라는 직감이 별로 틀리진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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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지나친 자기 확신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학 시절부터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가면 처음엔 어려워도 결국엔 승리를 쟁취한다’는 신념이 아주 강했다고 한다. 사법시험 9수 합격, 스타 검사,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자기 확신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는 현실과 담을 쌓고 자기만의 망상 세계를 구축했다. 반국가 세력인 국회가 패악질을 일삼고,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좌파 언론이 자기 지지율을 실제보다 낮게 보도하는 ‘윤석열 유니버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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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알코올을 잘 섭취하도록 진화한 동물 술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술이 없다면, 가수 로제가 한국의 술 게임에 착안해 만든 곡 ‘아파트’가 세계를 휩쓸지 못했을 것이다. 술이 없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전통시장을 방문해 멍게를 보고 “소주만 한 병 딱 있으면 되겠네”라며 입맛을 다시진 못했을 것이다. 왜 인간은 술을 마실까? 에탄올은 어떤 마법을 부려서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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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애꿎은 이에게 울분을 터뜨릴까 다음을 상상해 보자. 업무 중이던 당신은 잠시 휴게실에서 쉬고 있다. 마침, 당신의 친구인 순자가 휴게실에 들어왔다. 당신과 순자, 그리고 정숙은 회사에 함께 입사해서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다. 순자는 한숨을 푹 쉬면서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나 지금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당신은 순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순자가 답한다. “어젯밤에 정숙이랑 식당에서 함께 저녁 먹으면서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로 했거든. 그런데 얘가 약속시간 10분 전에 덜렁 문자로 날 바람맞힌 거야. 나 식당에서 혼자서 밥 먹었다니까. 사실 정숙이가 좀 자기만 생각하잖아. 그래도 자기가 귀찮다고 약속을 맘대로 취소할 줄은 몰랐어. 하아, 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순자의 절절한 하소연을 들은 당신은 어떤 심정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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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진화는 사실이자 과학 이론이다 미국의 한 진화생물학 교과서에 실린 만평은 이렇다. 의사가 환자에게 결핵이라고 진단한 다음에 묻는다. “혹시 창조론자이신가요?” “네, 진화는 그냥 이론일 뿐이지 사실이 아니죠.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죠?” 의사가 답한다. “인간이 항생제로 결핵에 맞서게 된 이후, 결핵균은 웬만한 항생제에는 내성을 지니는 새로운 균주로 계속 진화해 왔습니다. 다행히 이런 내성 세균에도 잘 듣는 최신 항생제가 근래에 나왔죠. 하지만 생명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믿으신다니, 값비싼 신약보다 80년 전에 처음 나온 항생제를 처방해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