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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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스캠 단지 인신매매, 정치와 미디어의 ‘아무 말’ 사람 본모습은 그가 바닥을 칠 때 드러난다는 말처럼, 한 사회의 성숙함은 충격적 사건 앞에서 공동체가 보이는 모습에 달려 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스캠 단지에서 일어난 감금·폭행·강제노동 등 인신매매 범죄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정치권은 이때가 기회라며 짐짓 분노한 표정으로 강경 발언을 쏟아낸다. 아예 외교를 포기한 듯하다. 미디어도 이를 제목으로 삼아 자극적 보도를 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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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첫차와 막차 사이에서 1990년대 학생운동은 스스로를 ‘막차 탄 세대’라 불렀다. 학생운동이 최절정에 달하고 점차 퇴조하던 시대의 분위기를 자조하는 말이었다. 작년 12·3 계엄 포고문에서 대학이 언급되지 않은 건 그 장기적 결과라 하겠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도 ‘막차’는 끊기지 않았다. 비주류일지라도 학생운동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대학생 대신 다른 이름을 지닌 다양한 운동이 성장해왔다. 겨울의 광장을 가득 메운 깃발과 응원봉은 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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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목소리의 문턱 앞에서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의 극단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최근 광복절 특별사면은 이 갈등을 재점화했다. 당시도 지금도 조국 사태를 둘러싼 논의 지형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당시 겪었던 여러 겹의 계급적 장벽이 건재하다는 걸 확인한다. 그 장벽은 담론들 사이에 놓여 있다. 우선 조국 사태의 성격을 위선과 ‘내로남불’로 규정하는 건 조국과 민주진영을 ‘위선자’로 만드는 걸로 족한 정치 공세다. 이 논리는 개인의 도덕성을 초점으로 삼기에 구조적 불평등에 침묵한다. 더욱이 위선을 강조할수록 차라리 뻔뻔하고 노골적인 악이 낫다고 여기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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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갑질 부정의 사회적 해악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의혹에 문득 <김지은입니다>를 펼쳤다. “고통스러웠던 일은 노동자로서 내가 할 이유가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업무 범위가 불분명하고 종속성이 강한 수행비서의 특성에 더해, 평판이 중요한 정치권의 특성이나 압도적인 권력관계 등이 김지은씨가 겪은 갑질과 성폭력의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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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마음의 전쟁과 절멸의 상상력 대중문화에서 마법이나 약물을 통한 정신 지배는 단골 소재다. 스타크래프트의 ‘마인드 컨트롤’이 대표적이다. 개인의 마음을 장악하고 통제한다는 발상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발발 75주년을 맞은 한국전쟁이 남긴 유산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전쟁에서 개개인의 마음은 ‘주전장’이었고, 마음을 포획하고 장악하려는 기술들이 서로 경쟁했다. 일제강점기에서 이어진, ‘빨갱이’의 전향을 목적으로 한 사상 통제가 대표적이다. 고문은 한 개인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지배해 전향시키려는 기술이었고, 고문이 가해지는 나약한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곧 ‘사상전’의 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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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나를 알아주는 후보를 알아보는 법 대선 후보 토론을 시청하며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시민이 선거 때만 주권자이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루소가 틀렸다. 선거 때마저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비난과 낙인, 사실이 아닌 거짓말, 소수자를 향한 혐오 선동이 가득한 대선에서 정치는 시민들에게 누가 더 잘 싸우는가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도록 만들고 있다. 지난 4개월 동안 열린 광장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사연과 공동체의 미래에 관해 수많은 말을 했지만, 대선 국면에서 그 모든 열망과 논의가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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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대선, 성의 없는 말들의 잔치 어릴 적 내게 큰 영향을 준 한 록밴드는 ‘지금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질문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곡을 쓴다고 했다. 이 지면에 글을 쓰는 나도 그런 고민을 한다. 지면이라는 공적인 발언권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지난 4개월간 광장에서 자유발언을 한 시민들도 그러했다. 주어진 시간은 3분, 그 짧은 시간 안에 청중을 사로잡는 이야기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발언자 다수는 공적인 자리에서 익명의 청중을 향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발언자가 많았다. 그들의 사연에 사회가 귀를 기울여주는 일 자체가 드물다. 그렇기에 자유발언은 더더욱 소중한 기회였을 것이고, 그만큼 시민들은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며 발언을 준비했다. 평범한 시민들의 발언이 감동적이고 무엇보다 재밌었던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청중도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절실함을 즉각 알아차리고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게 시민들은 타인의 말을 통해 배우며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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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계엄 폐지와 시민불복종 최근 광장에 국민의례와 애국가가 등장했다. 지난해 12월을 거치며 국민 대신 시민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았는데, 이를 뒤집듯 국민이라는 말이 되살아나고 있다. 고작 글자 하나 다를 뿐이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감각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12·3 쿠데타의 경험으로부터 얼마나 근본적인 성찰로 나아갔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날 밤 국가는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었고,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상식은 배신당했다. 배신의 경험은 국가를 질문에 부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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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경찰은 ‘헌재 폭동’ 막을 수 있을까 극우세력의 준동이 한창이다. 윤석열 체포·구속을 방해하고자 한남동에 모이더니 서부지법을 침탈했고, 이후 점입가경의 행보를 보인다. 세이브코리아는 지난달 15일 광주 금남로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저주와 증오의 언어를 퍼부어 광주를 모욕하려 했다. 부정선거부패방지대는 지난달 17일부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자택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며 주민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극우 유튜버와 시위대는 이화여대로 난입해 학생의 멱살을 잡거나 상처를 입혔다. 실패한 내란을 이어가 재기하려는 극우세력들은 사회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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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내가 만난 세계 2024년 12월3일 이후 두 달이 지났다. ‘내란성’ 스트레스, 불면증, 우울증 등 온갖 질환을 겪다가 다들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은 구속기소됐을 뿐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석열이 의회 무력화에 실패한 이후, 현재 내란 세력의 칼끝은 사법부로 이동했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법원을 침탈했다. 여당 의원들은 연일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를 향해 색깔론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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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총구 앞에서의 항명 12월3일 밤, 전화소리에 잠을 깬 뒤 계엄이라는 비현실적 현실을 마주했다.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장갑차를 막고, 창문을 깨고 난입하는 군인들에 맞서는 등 국회 안에서는 그야말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줄곧,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총을 맞고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계엄령의 역사가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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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내 고향 울산은 이주민 도시다. 산업화 시기 울산에 자리 잡은 내 부모세대는 산업도시 울산을 형성한 노동이주 1세대다. 어릴 적 1997년 울산의 광역시 승격 뉴스를 보고 신났던 기억이 선연한데, 오늘날 울산도 지역소멸 위기를 겪는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해 개발이 시작된 지 약 반세기 만에, 한 도시의 압축적 성장과 쇠퇴를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