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순
교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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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힙합과 러닝크루 지난주, 579돌 한글날을 기념하는 한글주간을 맞아 열린 토론회에 다녀왔다. 주제는 ‘외국 낱말, 외국 문자 줄일 방안’, 우리말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이라면 머리를 싸매는 숙제이다. 외국어는 물밀듯이 들어오는데 대체할 표현을 찾는 일은 더디니, 금세 우리말처럼 자리 잡아버리는 외국어가 많다. 신개념 용어가 잇따르는 정보기술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주로 영어에서 온 이 단어들은 이상하게 변형되거나 합쳐진 ‘콩글리시’로 널리 퍼지기도 한다. ‘핸드폰’ ‘헬스’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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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가을에는 손톱 발톱이 다 먹는다 한가위 연휴가 끝나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연휴 기간 가벼운 긴소매, 겉옷들을 꺼내며 올가을에는 이 ‘가을것’을 제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년간 이 시기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통에 가을다운 가을을 만끽하지 못했다.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천고마비’이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인데, 말띠 지인들은 “그래서인지 가을만 되면 살이 찐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디 말뿐일까. ‘가을에는 손톱 발톱이 다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을에는 손톱이나 발톱까지도 먹을 것을 찾을 만큼 매우 입맛이 당겨 많이 먹게 된다는 뜻이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식욕까지 떨어진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과 함께 풍성한 먹을거리가 눈앞에 펼쳐지니 가을에 살이 찌는 건 자연현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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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역대급’ 추석 연휴 기다리던 추석 연휴가 이번 주말 드디어 시작된다. 추석의 다른 말은 꽤 많다. 잘 알려진 것은 한가위이다.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가 합쳐진 말로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가위’ ‘가윗날’ ‘한가윗날’도 있다. ‘가위’는 신라시대 한 달 동안 열렸던 길쌈인 ‘가배’에서 유래했다. 음력 8월15일, 길쌈의 승패를 가르고 진 쪽이 술과 음식을 차려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온 ‘가배절’ ‘가배일’, 또 ‘팔월대보름’도 추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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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너무 많이 쓰이게 된 ‘너무’ 월요일 아침, 누군가 ‘주말 잘 보냈냐’고 묻는다. “친구들 만나서 완전 맛있는 거 먹고 엄청 떠들고 너무 재밌게 놀았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사이사이 들어간 ‘완전’ ‘엄청’ ‘너무’를 떼어보자.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떠들고 재밌게 놀았어.” 어쩐지 즐거움이 덜한 듯하다. ‘엄청’ ‘너무’ 같은 부사는 짧은 한 단어일 뿐이지만 알맞게 활용하면 당시 기분이나 느낌을 더 또렷하게 전달할 수 있다. ‘매우’ ‘아주’ ‘무척’ 등 종류도 다양해 우리말글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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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한 손, 한 쾌, 한 축 “고등어 다섯 손, 마늘 한 접, 북어 두 쾌를 더하면 몇개일까.” 얼마 전 SNS에서 단위명사에 관한 재밌는 글들이 돌았다. 똑같이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인데 어떤 것은 지금도 잘 쓰이지만, 어떤 것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글을 읽으며 그런 말들이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대가족이던 어릴 적, 반찬으로 고등어조림을 먹을라치면 고등어가 두 ‘손’은 있어야 했다. 철이 되면 ‘접’으로 들어온 오이나 마늘을 온 식구가 다듬고 장아찌 등을 담갔다. 누군가 골골대면 보약 한 ‘제’ 먹여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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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개발새발 손편지 가끔씩 손편지를 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자판을 톡톡 치는 데 익숙해진 손으로 펜을 쥐고 꾹꾹 눌러쓰기란 쉽지 않다. 받는 이가 잘 읽을 수 있게 또박또박 써야 한다. 그렇게 완성된 편지, 다행히 개발새발은 아닌 듯 봐줄 만하다. 개발새발, ‘개의 발과 새의 발로 쓴 듯 글씨를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뜻한다. 예전에는 개발새발을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 즉 ‘괴발개발’로 고쳤다. 표준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쓰니 표준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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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누구에게 물어도, 자문 꼭 사전을 찾는 단어들이 있다. 받침 하나에 표준어·비표준어로 갈리거나 활용형이 헷갈리거나 뜻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좋을 말들이다. 그중에는 뜻도 알고 형태도 복잡할 게 없지만 왠지 자주 검색해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자문이다. ‘자문’은 여러 뜻을 갖고 있지만 주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에게 스스로 묻는다’라는 자문과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 등에게 의견을 묻는다’라는 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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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더위를 먹고, 친구도 먹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출발하기 전과 돌아다니는 틈틈이 지인들로부터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걱정 어린 당부 덕분에 별 탈 없이 다녀왔다. ‘여름철 더위 때문에 몸에 이상 증세가 생겼다’는 걸 흔히 ‘더위를 먹었다’고 표현한다. 실제로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먹다’란 단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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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유명‘세’는 세금이다 “배역을 맛깔스럽게 소화해 유명해졌다” “연기 변신에 성공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어떤 배우가 멋진 연기를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얼굴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유명해졌다거나, 유명세를 얻었다고 한다. 둘 다 비슷하게 좋은 의미를 담은 듯하지만 사실 큰 차이가 난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유명세’란 단어다. ‘유명+세’로 이루어져 있어 ‘유명’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뒤에 붙은 ‘세’가 문제다. ‘기세’나 ‘세력’에 쓰이는 ‘권세 세(勢)’가 아니라 ‘세금 세(稅)’이기 때문이다. 유명해지는 바람에 세금을 내게 됐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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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몇번 죽을 쑤더라도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과목은 대학 입시에 맞춰 세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설명·논설문을 분석하는 ‘국어’와 시·소설 등을 파헤치는 ‘문학’, 그리고 한글맞춤법을 다루는 ‘문법’이다. 다른 두 개는 그럭저럭 따라갔지만 문법이 문제였다. 시험만 봤다 하면 말 그대로 ‘죽을 쒔다’. 이렇게 쑨 죽은 누가 먹었을까. ‘죽 쑤어서 개 준다’고 하니 강아지가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써 한 일을 남에게 빼앗기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했다’는 뜻의 이 속담처럼 ‘죽’ 하면 대개 부정적인 표현이 떠오른다. ‘다 된 죽에 코 빠뜨린다’ ‘죽도 밥도 안 되다’ ‘죽 끓듯 하다’ 등 오랫동안 노력한 일이 허사가 되거나, 이도 저도 아니거나, 변덕스러운 상황을 나타낼 때 ‘죽’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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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더위 “여지껏 겪어보지 못한 더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7월 밤”. 무더위 지나니 불볕더위, 다시 찜통더위를 거쳐 가마솥더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가 이어지며 올해 여름나기가 만만찮다. 더위가 밤낮없이 기승을 부리는 통에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곤 한다. 더위를 표현하는 우리말은 다양하게 많이 쓰여왔다. 폭염, 혹서 등 한자어와는 다르게 느낌도 바로 와닿는다. ‘찜통더위’ ‘가마솥더위’는 습도가 높고 후텁지근한 더위를 의미하는데 단어를 접하기만 해도 꿉꿉해지고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무더위’도 이쪽이다. ‘물더위’에서 왔기 때문이다. 반면 ‘불볕더위’ ‘불더위’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며 바짝 마른 더위이다. 비슷하게 ‘강더위’도 있는데 여기의 ‘강’은 강할 강(强)이 아니라 ‘마른’의 뜻을 더하는 순우리말 접두사다. 심한 더위를 가리키는 말로는 ‘된더위’ ‘한더위’ ‘복(달)더위’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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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지만…꺼지지 않는 불기둥 ‘조로아스터교 3대 성지’ 머릿속에 그려본 세계지도에서는 위치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쉽게 와닿지 않는 그곳. 기록적인 폭염에 한국이 녹아내릴 듯하던 무렵, 캅카스(코카서스)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다녀왔다. 신화와 종교가 뿌리내린 성스러운 땅이자, 그에 어울리는 문화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 성스러운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은 이란, 러시아 등과 접한 카스피해 연안의 유럽국이다. 경제의 상당 부분을 석유와 천연가스가 지탱하고 있어 ‘불의 나라’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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