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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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일본유신회의 ‘연방제’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역사적 인물로 꼽히는 사카모토 료마(1836~1867)는 에도시대 말기 하급 무사 출신으로, 강력한 추진력으로 일본 근대화 출발점인 메이지 유신에 기여했다.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가 1960년대 신문에 연재한 소설 <료마가 간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됐다. 자민당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민주당 정부가 미·일 갈등,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비틀거리던 2010년대 초반 일본은 료마가 활약하던 난세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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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이런 동맹이 왜 필요한가 한국에 거액의 대미투자를 강요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보면 한국을 전범국가 다루는 듯해 불쾌감을 참을 수 없다. 한국이 외환보유액을 줄이지 않고 마련할 수 있는 대미 투자는 연간 200억달러가 상한이다. 트럼프가 선불로 요구하는 3500억달러는 한국 GDP의 5% 수준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에 부과한 배상금(경제 규모 대비)에 맞먹는다. 당시 연합국들은 피해 배상뿐 아니라 독일 경제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렸다. 한국이 ‘미국의 기술과 일자리를 빼앗은 경제침략국이니 거액의 배상이 당연하다’는 것인가. 이민당국이 한국인들을 콕 집어 체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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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No America’ 1979년 10·26 사태 후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후계자로 전두환을 인정한 것은 비극의 도화선이 됐다. 전두환 신군부가 그해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던 날 한국군 작전권을 가진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최전방 9사단의 서울 출동을 막지 않았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열린 ‘서울의 봄’과 민주화 열망을 신군부는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확대로 짓밟았고, 광주에 공수부대를 보내 살육극을 벌였다. 위컴은 5월22일 ‘폭동 진압’을 위해 한미연합사 소속 한국군의 이동을 허용해달라는 신군부 요청도 승인했다. 미국은 신군부 만행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지만, 그들을 만류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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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한·일 시민들이 만든 조세이 탄광 기적의 드라마 녹색 바탕의 수중촬영 화면 속에 새우잠을 자듯 모로 쓰러져 있는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하반신은 신발과 작업복에 허벅지와 둔부까지 윤곽이 뚜렷했지만, 상반신은 진흙 등으로 덮여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화산재에 당한 폼페이 시민들이 그렇듯 물로 가득 찬 해저 탄광의 갱도에서 발견된 광부의 주검은 83년 전 사고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들이 겪었을 생의 마지막을 생각해본다. 갱도가 무너지며 바닷물이 삽시간에 들이차자 극한의 공포에 빠졌을 것이다. 얼마간 숨을 참다가 견디지 못해 물을 들이켜다 질식했을 것이며, 산소부족으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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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두번째 분단’의 해소가 급선무다 한국엔 분단선이 두 개 있다. 남북 군사분계선에 이어 경기 남부에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르는 ‘제2의 분단선’이 그어져 있다. 해마다 많은 청년들이 그 선을 넘어 몰리면서 수도권은 부풀어오르는 반면 그 바깥은 피폐해지고 있다. 교육, 주거, 취업 등 한국 사회의 갖가지 문제가 두번째 분단에서 파생된다. 그 폐해는 남북 분단 이상이다. 역대 정부는 집권 초기 예외 없이 균형발전을 강조했으나 생색내기였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방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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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한·일 협력의 새 출발은 조세이탄광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군함도(하시마)’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일본이 했던 약속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려던 시도가 불발됐다. 일본이 군함도의 ‘강제노역’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을 한국이 의제로 다루려 하자 일본이 표대결까지 불사해가며 무산시킨 것이다. ‘과거사 불(不)사과’라는 ‘아베 독트린’이 일본 관료조직에 견고하게 새겨져 있음을 다시 확인케 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5년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우리의 아이나 손자, 그 후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라는 숙명을 계속 짊어지도록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고인이 된 아베의 유훈이 아베와 정치색이 다른 이시바 시게루 현 내각에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서 일본 책임을 면제해준 윤석열이 불법계엄으로 파면돼 ‘한·일 아베 유훈 체제’에 제동이 걸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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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의 단도직입 “대전환의 시대, 리베로처럼 경제·안보 넘나드는 정부 조직 구축을” 일본 도쿄대 박사 취득 후 삼성경제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을 거쳐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던 시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무역위원,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을 맡아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 등으로 인한 세계 경제질서 격변과 그것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경제안보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시기다. 21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제안보와 통상 공약 개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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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주한미군 감축, 피할 이유 없다 전임 대통령 윤석열의 불법계엄으로 초래된 외교공백기에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여러 논의들이 미·일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리더십 궐위 상태인 한국은 체스판의 말 신세였고, 한국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 듯한 수사들이 난무했다. 일본의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지난 4월 한반도 해역과 동·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쟁구역으로 보고, 모두 힘을 합쳐 중국에 맞서자는 ‘원 시어터(One Theater·하나의 전역)’ 아이디어를 내놨다. 표현이 자극적이란 지적이 있자 인도·태평양 해역을 하나로 간주해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협력을 강화하자는 ‘오션(OCEAN)’으로 수정했지만, ‘한국과 대만을 인계철선으로 묶자’는 핵심은 그대로다. 폭탄과 연결돼 건드리면 터지는 철선처럼 대만해협에서 충돌이 벌어지면 한국도 자동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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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그날의 마음들 KBS가 지난 2월부터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라는 영상물을 공개하고 있다. 비상계엄이 내려진 지난해 12월3일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증언을 담은 영상물로, 그날의 마음들이 드러난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국회 출입구에 잠시 틈이 열려 현장에 함께 있던 낯모르는 7~8명과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국회 본청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인생 전체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딸들에게 잘못한 일도 떠오르고, 대학 다닐 때 비겁했던 일도 떠올랐다고 한다. ‘주마등’은 주로 죽음의 위기를 자각한 뇌의 작용에 의해 과거의 일들이 순식간에 재생되는 현상을 형용할 때 쓰인다. 그 심야에 군인들과의 충돌이 뻔히 예상되던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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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WTO 체제의 종언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교역 진흥을 위해 창설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한국이 정식 가입한 것은 1967년이지만, 실은 한국전쟁 시기부터 GATT 가입이 추진된 바 있다. 박노형·정명현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 9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GATT 회원국(체약국) 회의에 주영공사가 참석했고, 약소국인 한국이 유리한 조건으로 GATT에 가입하는 데 회원국 3분의 2가 동의했다. 그러나 전시 상황으로 인해 의정서 서명을 몇차례 연기한 끝에 가입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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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한·미 동맹 ‘중독’에서 벗어날 시기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지정한 배경과 관련해 조지프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한국인들이 로스앨러모스, 아르곤 등 미국 국책 연구소에서 반출해선 안 되는 자료를 빼내려던 사건들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원폭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최초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는 아르곤과 함께 핵개발 및 원자력 기술 개발의 핵심 연구소다. 이들 연구소가 핵·원자력 외에도 여러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어떤 이가 무슨 자료를 빼냈는지 공개되지 않아 ‘사안의 민감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민간인의 일탈행위에서 비롯된 단순 보안사고 때문에 미국이 오랜 동맹국을 ‘불량국가’로 분류했을 것 같진 않다. ‘큰 문제(big deal)’가 아니라는 조지프 윤의 외교적 수사 뒤에 가려진 배경과 맥락을 더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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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 계엄이 정당화한 ‘적대적 두 국가론’ 12·3 비상계엄 시기 소집된 HID(북파공작원) 요원들에게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을 체포·심문하는 것 외에 어떤 임무가 부여됐는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정보사가 구입한 북한군복 170벌 용도도 분명치 않다. HID 동원 총책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 메모 조각들을 맞춰보면 정치·노동·종교·법조·언론계 ‘문제 인사’들을 체포한 뒤 배에 태워 북방한계선(NLL) 근처 해상에서 선박째 폭파시키는 그림이 그려진다. 노상원은 2016년 대북 임무를 마친 요원들에게 원격 폭탄조끼를 입혀 귀환 전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군으로 위장한 HID 요원들에게 ‘반윤 인사’들을 처리토록 한 뒤 요원들까지 제거해 증거를 없앤 다음 이를 북한 소행으로 모는 ‘북풍공작’을 시도했을 것이란 극단적 추론도 성립한다.